한나라당이 18일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천정배(千正培) 법무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권 파문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를 국가정체성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현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정체성 투쟁을 선언했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이날 염창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 정체성 수호를 위한 '올인 투쟁'을 천명하고 나섰다. 박 대표는 작년 7, 8월에도 송두율 교수의 부분 무죄 판결, 의문사진상규명위의 간첩·빨치산 민주화 기여 인정 등이 논란이 될 때도 국가 정체성을 무기삼아 대대적인 대여공세를 펼친 바 있다.
이날 '제2차 정체성 투쟁'에 나선 박 대표는 결연한 의지를 '시위'하듯 밤색 바지차림이었고 회견문을 읽어내려가는 목소리에는 어느 때보다도 힘이 배어 있었다. 박 대표는 회견에서 노무현(盧武鉉) 정권의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 시국 상황에 대해 "국가 정체성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 뒤 국가체제 수호를 위해 국민과 함께 구국운동을 벌여 나갈 것임을 밝혔다.
그는 "정권의 심장부에서 나라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고 있다"며 노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에 공세의 초점을 맞췄다. 그는 특히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는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 고 강조했다. 비타협적 강경투쟁을 예고한 대목이다. 박 대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드는 것은 지진과 마찬가지로 근본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말해 장외투쟁도 불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박 대표는 "국립현충원도, 4·19 정신도, 광주 5·18 정신도 함께 안고 가야할 소중한 역사지만, 만경대 정신까지 품고갈 수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확고한 원칙"이라는 말로 정체성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박 대표는 일각에서 과잉대응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을 의식한 듯 "이번 강 교수 사태는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에게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걸림돌인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며 향후 정치일정에서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북한 정권 비위 맞추기'라고도 분석했다. 박 대표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로 이어졌고 '구국운동'으로 의미가 부여됐다. 박 대표의 이 같은 대여투쟁선언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정권의 정체성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현 정권 집권 후반기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고 당장 '10·26 재선거'에서 보수표를 결집시켜 승리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당장 재선거 유세에서 강 교수 파문과 국가 정체성 문제를 핵심이슈로 끌고갈 방침이며 내달 초 '국민대회' 성격의 대규모 장외집회도 검토하고 있다.
더욱이 작년과 달리 국보법 개폐 문제가 본격 제기되지 않은 상황에서 박 대표가 이번 파문을 국보법 폐지 반대로 연결시킨 것은 이번 기회에 여권의 국보법 폐지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평소 민생우선정치를 강조해온 박 대표로선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지역구도타파를 위한 대연정 제의 등에 대해 "민생부터 챙기라"며 무시해왔던 박 대표다. 당장 '색깔 논쟁' 논란과 "민생은 외면하고 장외로 나서느냐", "인권이나 학문·사상의 자유 문제 등은 도외시한 채 정치공세냐" 등 반론이 불보듯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박 대표가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대여 이념투쟁을 주도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야권내 대권경쟁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염두에 둔 듯 박 대표는 "우리의 비판과 요구는 정당한 것이며 결코 색깔논쟁이 아니다. 보수냐 진보냐로 따질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면서 "이런 중요한 문제를 정치공세라고 한다면 큰 잘못이다. 자유민주체제를 지켜내느냐, 무너지고 마느냐의 문제"라며 선수를 치고 나섰다.
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법원장회의 "법치주의 실현 위해 사법독립 반드시 보장돼야"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폐지안 본회의 부결… 의회 앞에서 찬반 집회도
李대통령 "한국서 가장 힘센 사람 됐다" 이 말에 환호나온 이유
李대통령 지지율 50%대로 하락…美 구금 여파?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