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한 노년 老테크-(하)믿을 건 부부뿐이다

"노인종합복지관에 나오는 어르신들 중 공직이나 교육자출신이 많은데도 이들은 지금은 연금도, 퇴직금도 없이 지냅니다. 대부분 자식들에게 지원을 해주고 빈털터리가 됐죠. 자식들이 어렵다면야 도와주는 게 당연하겠지만 모두들 왜 그랬나 후회하고 있습니다."

윤 욱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장은 요즘 '은퇴 후 자식들을 믿지 말라'는 말을 실감한다. 퇴직금을 자식들에게 건네주고 '앞으로 잘 모셔주겠거니' 생각했다가 뒤늦게 잘못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 믿을 건 부부뿐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면야 그보다 더 좋을 수야 없겠지만 마음먹은 대로 안되는 게 돈 아닙니까. 하지만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더라도 부부간의 마음이 맞으면 노후도 더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윤 관장은 부부가 함께 하는 노후대비라야 최적의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부부 공통의 취미를 가지는 것은 필수.

대기업에서 30여 년 일하다가 작년에 은퇴한 이모(60·대구시 수성구)씨. 그의 인생은 회사와 일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동안 일에 쫓겨 이렇다 할 취미도 즐기지 못했고 노년에 대한 준비도 전혀 없이 퇴직을 맞았다. 요즘은 하루종일 집안에서 지낸다. 혼자 사는 생활력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별다른 취미도 없기 때문이다.

'젖은 낙엽족'. 이씨와 같은 사람들에게 따라붙는 반갑지 않은 호칭이다. 은퇴 후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 아내에게 붙어있다는 뜻. "늦었지만 아내와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기위해 자원봉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씨는 부부가 함께 이발.미용기술을 배워 볼 생각이다. 부부 공동의 일과 관심사를 가지기위해서다.

"노년에 자녀들과 함께 살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내와 둘이서 하루종일 집안에서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일 테고…. 은퇴 후의 부부생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이영석(44·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아내와 함께 지난 9월부터 대구 앞산청소년수련원에서 하는 암벽등반교실에 나간다.

"암벽등반이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지만 하나의 공통취미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같이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연습인 셈이죠."

동갑내기인 이범석(36·대구시 남구 대명11동)·김영순씨 부부는 함께 낚시를 즐기는 경우. 4년전부터 남편을 따라 낚시에 나섰던 김씨는 요즘은 바다낚시도 마다않는다. 이씨는 "은퇴 후 자녀들이 집을 떠나고 둘이서 지내는 빈 둥지기간이 늘어날텐데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인생의 후반부가 괴로워질 것"이라며 "늙어서도 취미활동을 같이 할 수 있다면 노후는 저절로 즐거워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취미 뿐 아니라 부부가 함께 건강해야 서로 믿고 의지하는 확실한 노후대비가 된다.

"아무래도 은퇴 후에는 그 전보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겠죠. 그만큼 삶의 패턴 자체가 확 바뀔텐데 젊었을 때부터 부부가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서영학(43·대구시 남구 이천동)씨는 매일 아침 6시쯤 아내와 함께 대구 앞산의 고산골 약수터를 다녀온다. 왕복 1시간 가량의 등반을 매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건강도 챙기지만 이를 은퇴 후 둘이서 즐겁게 지내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씨는 산행을 하며 1시간 가량 아내와 함께 여가 보내는 방법, 공통의 관심사 만드는 법, 서로에게 도움되는 역할 찾기 등을 꾸준히 찾고 있다고 했다.

김영모(35) 사회복지사(대구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 부관장)는 "젊을 때부터 취미활동을 부부가 함께 하고, 남편의 은퇴 후 집안에서의 늘어난 시간에 대비하는 등 달라질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며 "20세 전에 인생계획을 세우듯 40세 전에도 은퇴 후 제2의 삶을 아름답게 살기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 : 지난 19일 짬을 내 민물낚시를 즐기고 있는 이범석.김영순씨 부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