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중간고사를 잘 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고1 학생입니다. 자꾸 조급해지고 마음이 갑갑하여 어디로 바람을 쐬러 가고 싶고 책도 읽고 싶습니다. 이럴 때 참고할 만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 중간고사가 끝난 요즈음 많은 학생들이 심한 허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며 그 고통을 호소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통과의례'란 말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부와 시험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학생이라면 피할 수 없습니다.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슬기롭게 극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세계와 목전에 전개되는 현실이 조화와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A 까뮈는 부조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에 부조리한 현실에서 아무리 도피하려 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서 용감하게 대결하는 것만이 그것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까뮈는 강조했습니다. 까뮈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반항'은 도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적극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시험결과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기 바랍니다.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생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낙관하며 확신을 가지기 바랍니다. 미래를 불안해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위축된 마음 때문에 손발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핵심적 생명활동은 변화입니다. 확신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내가 소망하는 대로의 변화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주말을 이용하여 짧은 여행이나 산행을 해보기 바랍니다. 여행은 마음에 여유를 주며, 상처를 치유해 주며, 아집과 편견을 버리게 해 줍니다. 여행은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고 자신과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줍니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오는 해방감과 마음의 자유를 줍니다. 여행을 통하여 우리는 방랑의 즐거움, 끝없는 상념, 고독한 마음 상태를 평소보다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으며, 우리의 내면은 이런 것들을 진하게 경험한 만큼 넓어지고 깊어지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학생들은 제대로 된 여행이라는 것을 할 형편이 안 됩니다. 가능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차를 타지 말고 그냥 도보로 아름답고 추억에 남을 만한 길을 걸어가며 사색에 잠겨보십시오.
'도로'는 넓고 곧아서 어느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영에 근접하게 하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습니다. 포장도로와 터널은 도로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길'은 비포장과 꾸불꾸불함과 우회를 좋아합니다. 따라서 길은 여유와 자연스러움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우리는 학교생활을 비롯해 거의 모든 일에서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소위 '도로의 문화'에 익숙해 있습니다. 건물도 빨리 지어야 하며, 공부도 학원에 나가 빨리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다지지 않고 속도만 중시하면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무수한 대형 참사들은 졸속함이 가져온 비극이었습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느긋하게 주변의 풍경도 즐기면서 길을 가는, 때로 낙조를 바라보며 까닭모를 슬픔에도 잠겨볼 수 있는 '길의 문화'를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공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공부에 지름길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멀리 우회하며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야 그 내용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고 배운 내용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독서에 관한 특별한 충고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읽어서 즐거울 수 있는 책이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으니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한 독서가 나쁘거나 천박한 것은 아닙니다. 즐거움 그 자체는 정말 귀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적 즐거움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만족스럽고 가장 지속적인 내적 충만함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항상 빛나는 눈과 현재를 긍정하며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저것 읽다 보면 나름의 좋은 독서 습관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바뀐 입시제도에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젊은 날의 독서란 저수지에 물을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장마철에는 이 골 저 골에서 많은 물이 흘러들어와야 합니다. 흙탕물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름날에 가득 채워 놓기만 하면, 세월과 더불어 스스로 정화되어 맑은 물이 됩니다. 가을날 수로를 따라 흘러나오는 물은 여름날의 흙탕물이 아닙니다. 그 호수만이 가지는 독특한 향기와 상쾌한 촉감을 가진 생명수인 것입니다. 젊은날 머리와 가슴에 다양한 지식과 진한 감동을 가득 채우십시오. 날이 갈수록 그것은 스스로 깊이와 폭을 더하면서 학생의 미래를 풍요롭게 해 주는, 학생만의 독특한 지적 양식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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