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월의 마지막 밤엔…

'우우우우∼,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이맘때쯤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떠올리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10월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시계 바늘.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과 스산한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은 가을의 절정을 느끼게 하지만, 이 계절이 가면 올 해 달력도 달랑 두 장만 남게 된다. 그래서일까. 10월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의 소회도 남다른가 보다.

"출근길에 차를 몰고 나가면 길가 느티나무에 단풍이 곱게 들어있고 한창 무르익은 가을이 계절적으로 참 좋은 것 같아요."

김득기(43·OK 부동산 컨설팅 소장) 안미영(40·아이조아 스튜디오 실장) 씨 부부에게 10월은 좀더 특별한 계절이다. 10월 29일은 이 부부의 10주년 결혼기념일이자 아들 시우의 여덟 번째 생일날.

"자연분만했는데도 그렇게 됐네요. 아이의 생일이 아니어도 결혼기념일은 까먹을 수가 없지요."

선배의 데이트 장소에 멋모르고 따라갔다가 첫 눈에 반해 2년 간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 첫 만남도 단풍이 붉게 물든 10월 가을 산에서였다.

"결혼 10주년은 또 다른 10주년을 향해 달리는 '마디'가 아닙니까. 며칠 휴가 내 기념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지만, 일한다고 바빠서 그럴 시간이 안 되니 주말에 오붓하게 외식하고 팔공산 단풍 구경이라도 해야지요."

정신 없이 살아온 시간들. 여느 맞벌이 부부가 다 그러하겠지만 결혼해 아이 낳아 키우고 일하며 정말 바쁘게 살아왔다. 신혼 때 한 두 번 같이 영화 보러 간 기억밖에 없는데 올 가을에 정말 오랜만에 같이 영화 보러 갈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고 한다.

"건강이 최고인데 아내 나이가 40이 넘어가니까 걱정이 돼 건강검진도 받아보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며 아내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비단 결혼기념일을 맞는 부부뿐이랴. 가는 10월을 아쉬워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적잖다.

"황망하죠. 벌써 한 해가 가는구나 싶은 게…. 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에릭'(본명 서만완·46) 씨의 가을 타령에 와인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더 아름답게 들렸다. '대구와인클럽'의 30·40대 회원들의 소모임인 '비나모르'의 '번개(갑자기 만나는)' 모임.

"386세대라면 비슷한 감성에 젖지 않겠어요. 대학교 중간고사도 끝나고 가을축제 뒤에 미팅한다고 몰려 다녔을 때이니까요."

옛 추억에 젖은 '리필'(본명 배진덕·43) 씨가 "우우우∼" 하며 이용의 '잊혀진 계절' 한 소절을 바로 뽑아내 박수를 받았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아름다운 계절에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지금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베티블루'(본명 조명숙·35·여) 씨는 "10월의 마지막 날 젊은 연인들은 특별하게 만나 영화도 보고 '발렌타인데이'처럼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며 "계절이 좋아 10월 말에는 결혼식도 많이 열리는 것 같다"고 했다.

회사원, 의사, 변호사, 보험설계사 등 하는 일은 다르지만 격의 없이 닉네임(별명)을 부르며 나이를 잊고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이 즐겁다는 사람들.

"10월 31일 밤 '번개' 모임을 안 할 수가 없지요.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술 한 잔 해야죠. 어허, 그런데 10월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찌 됐든 즐거운 고민이다. 정신 없이 허둥대며 살아온 시간에서 잠시 비켜나 올 한 해가 다 저물기 전에 삶의 의미를 다져보고 싶다는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글·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사진·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 우우우우~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우우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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