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도권 공장 허용' 구미 "폭탄 맞은 기분"

"LG의 신규투자가 중단되면 구미만 망하는 게 아니라 대구·경북이 동반 몰락합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대기업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 방침이 나온 지 엿새째인 10일 오후. 직격탄을 맞게 된 경북 내륙의 수출전진기지인 구미시와 기관단체들은 대책 마련에 필사적인 모습이었고 시민들은 암담한 미래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구미상공회의소에서 만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마디로 폭탄 맞은 기분"이라며 격앙된 감정을 토로했다. 지난 2003년 LG필립스 LCD(주)의 경기도 파주 진출 이후 '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닥쳤다고 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현수막이 걸렸던 상공회의소 네거리에는 '수도권 규제완화 38만 구미시민 다 죽인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공공기관 수십 개가 옮겨오는 것보다 LG하나가 낫다. 차라리 공공기관 이전을 반납하겠다"는 성난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수도권공장설립규제완화 비상대책본부'가 마련된 구미시청에는 연일 비상간부회의가 열리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김관용 시장은 "큰 둑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급박한 상황"이라며 "구미시민들의 생사가 걸린 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등을 항의방문하고 창원, 광주 등 타 도시와의 연대 투쟁을 준비하는 한편 이의근 경북도지사와 김관용 시장이 LG본사를 방문해 '읍소'하는 전략까지 세우고 있다.

채동익 본부장(구미시 경제통상국장)은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해온 참여정부 기조와 정반대의 정책인 만큼 즉각 철폐돼야 한다"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싸움이 시작됐다"며 결연함을 내비쳤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발표 직후의 당혹감을 넘어선 분노가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외쳐온 참여정부가 기업논리에 밀려 태도를 바꾼데 대한 배신감마저 느끼는 듯했다.

구미경실련 조근래 사무국장은 "구미경제의 공단 의존도가 절대적인 만큼 1조 7천억 원으로 추산되는 LG계열사들의 추가투자가 없어지면 구미시는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떠나는 기업을 탓하기 전에 공단 인력의 70%를 차지하는 외지 근로자들이 불편사항으로 꼽은 문화·교육 인프라 등 양질의 정주여건 마련을 위해 구미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반성해야 한다"며 시의 소홀함을 탓했다. 구미 경실련은 LG제품 애용의 일환으로 '019 이용 범시민캠페인'도 벌일 계획이다.

LG에 납품하는 구미, 김천, 칠곡 등의 280여개 협력·하청업체들도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여 지역경제는 빈 껍질만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한 업체 대표는 "경기도 파주의 42인치 이상 대형 LCD가 주력상품이 되면 결국 따라 옮길 수밖에 없는데 비싼 공장부지와 이전비용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위기감도 서서히 확산되고 있었다. 공구업을 하고 있는 장동기(50) 씨는 "지금 같은 불황에 구미 경제의 절반 이상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LG가 빠져나가면 어떻게 먹고살란 말이냐"고 성토했다. 지난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다는 김모(50·구미 광평동) 씨는 "가뜩이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 격차가 큰데 정부가 대기업의 편의만 중시하면 지방민들은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미는 공황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구미 경제에 절대적인 몫을 차지하는 LG의 IT관련 계열사들이 정부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으로 신규투자를 중단할 가능성이 높아 구미시를 비롯한 대구·경북 전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은 구미 LG공장 전경.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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