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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양주동 선생은 살아 생전 늘 "걸어 다니는 국보"라고 자칭했다. 택시를 타면 "국보가 탔으니 조심하라"고 했고 "국보가 봐 주는 것만도 영광"이라며 신문 무료 구독을 고집했다. 자칭 국보는 1'4후퇴 당시 피란 열차를 알아보다 같은 처지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 등을 만나 "우리나라 국보들을 이렇게 대접하면 쓰나"라고 투덜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국보임을 내세웠고, 사람들도 자칭 국보 양주동을 미워하지 않았다.

◇ 그 이후 사람을 국보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은 감독으로 은퇴한 선동열 선수에게 '국보급 투수'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그 자신 많은 별명 중에서 이 별칭을 제일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줄기세포 연구 성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황우석 박사는 '국보급 교수' 대접을 받는다. 적잖은 스포츠 스타들에게도 '국보급'이란 애칭을 붙여준다. 그러나 국보급 선수라는 표현을 놓고 언어의 인플레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 우리나라 국보 1호는 남대문이다. 조선총독부가 조선 고적 1호로 지정한 것을 대한민국 정부 역시 그대로 이어 받았다. 식민지 시대 지정됐다는 이유로 남대문이 '국보 1호' 의 자리를 내놓을 뻔 했다. 문화재 당국이 당분간 현행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1호로서의 체면은 구겼다. 국보 1호 교체를 둘러싼 찬반 양론에서 문화재는 문화 논리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정치 논리를 이긴 셈이다.

◇ 우리나라 국보는 남대문을 시작으로 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좌상까지 307점이 있다. 숫자가 같지 않은 것은 국보 274호로 지정됐던 '귀함별황자총통' 때문이다. 거북선에서 사용하던 총통으로 인정받아 발굴 책임자에게 훈장을 안긴 주인공이지만 가짜로 들통났다. 북한에선 평양성을 국가 지정 문화재 국보급 제1호로 관리하고 있다.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종합해 만든 고구려 사람들의 수작이다.

◇ 국보 교체 논란은 국민의 국보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교체 논의는 이미 9년 전에도 있었지만 불가 판정을 받았다. 국보를 놓고 '일제 잔재' 운운은 국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비판도 나왔다. 조상은 후손의 근본이며 면면히 이어지는 역사는 국가의 근본이다. 국보는 오랜 세월의 역사가 오늘에 남겨준 선물이다. 역사는 오늘의 눈으로만 판단할 일은 아닐것 같다.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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