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위기를 기회로-(4)대구를 다시 보자

'북구' 대구-구미 잇는 전략적 요충지

"대구를 보면 답답하다 못해 가슴이 터집니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대구경제살리기' 캠페인이 벌어진지도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왜 대구가 이 모양 이 꼴인지를 그토록 모른단 말입니까. 지역 사정에 밝은 세계적 기업인을 모셔놓고 솔직하게(?) 어떻게 하면 대구가 잘살 수 있는 지 한 번 물어보십시오."

"아마, 첫 번째 대답은 '이미 중요한 기회를 다 놓쳐버려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는 것이고, 두 번째 대답은 '그래도 비빌 언덕은 구미인만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말일 것입니다."

구미산업단지에서 만나는 대기업 임원 대부분은 '구미·대구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이다. 특히 대구·경북이 고향이거나, 지역대학 출신인 경우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격정과 좌절을 토로한다. "기업인으로서 조심스럽다"는 반응 뒤에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쏟아놓는 기업인들의 분노가 쏟아진다. 대구가 그동안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올해 구미공단을 혁신클러스터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구미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이 출범했다. 삼성전자(주) 등 14개 대기업이 전체 생산의 83%, 수출의 91%를 차지하지만 본사와 연구개발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구미의 교육·의료·문화시설 등 정주여건도 개선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리라 생각하는 기업인과 전문가는 많지 않다. 대기업의 참여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인구 37만 명의 중소 산업도시인 구미가 세계 일류기업이 요구하는 인프라를 모두 제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구미의 R&D 기능 보강과 정주환경의 개선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산업도시로서의 구미의 한계를 인정하고, 부족한 분야를 대구와 경산, 포항 등 다른 지역에서 보완해야 대구·경북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이미 수도권으로의 산업기반 유출이 본격화 되지 않았습니까."

'구미-대구'를 중심으로 한 대구경북 클러스터의 가능성은 '애니콜 신화'가 이미 보여주었다. 1980년대 말 구미공장을 중심으로 시작된 삼성의 모바일 산업은 '구미-생산' '대구-R&D'로 분화되면서 경쟁력을 갖춰갔다. "대전 이남은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남방한계론)"는 일부의 주장을 보기좋게 반박한 것이다. 2002년부터는 '구미-대구 라인에도 본격적인 R&D 전진기지를 구축하자'는 방침이 서고, 대구 북구(칠곡)지역에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집중되면서 모바일밸리를 형성했다. 전성기에는 무려 4천여 명에 이르는 R&D인력이 활동했다.

그러나 대구는 북구 칠곡지역의 산업적 중요성을 간과한 채 그저 '베드타운'으로 개발했고,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현풍 입지에 이어 모바일단말상용화지원센터마저 성서공단에 위치시켰다. 그 결과 올해들어 모바일밸리는 수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R&D인력도 2천500여 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으로 구미 LG계열사의 LCD 부문에 빠져나간데 이어서 구미 삼성전자의 모바일 R&D 부문까지 대구·경북을 떠날 위험에 처한 셈이다.

"모바일과 함께 대구의 전략산업 1순위로 지정된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경우도 구미에 있는 삼성과 LG 계열사의 생산기반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구미와 대구를 잇는 대구 북구와 경북 칠곡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계속해서 무시하게 되면 대구경북의 미래는 없습니다. LG가 생산기반을 수도권으로 옮기려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우수한 인력을 지역에서 충분히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구는 그동안 동(수성구)-서(달서구·달성) 축을 중심으로 개발역량을 집중해 왔다. 이에 따라 수성구는 교육 등 전국에서 알아주는 정주환경을 갖추었지만 평당 1천만~1천500만 원을 웃도는 주거비 부담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또 성서공단과 달성공단 등의 산업기반은 구미의 첨단산업과 울산의 자동차 산업에 의존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구미에 기반을 두었던 LG필립스LCD에 이어 LG이노텍, LG마이크론, LG전자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자, 희성전자를 비롯해 성서공단과 달성공단에 입주한 11개 중견 협력업체들의 지역이탈이 크게 우려될 뿐만 아니라, 디보스를 포함한 LCD TV업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대구첨단산업의 구미 의존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미 대기업, 김천·칠곡 중소협력업체로 연결되는 대구 북구(서구 일부)는 경북대의 인적자원을 활용한 R&D와 경북 중북부의 교육열을 소화시킬 수 있는 교육특구로 육성하는 한편 대구전시컨벤션센터(EXCO) 등을 활용해 대구·경북의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지대로 키우고, 동구는 구미와 대학도시 경산, 경주, 포항, 울산을 잇는 장점을 이용해 기술집약적 첨단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다 대구의 중심인 중·남구를 디지털문화산업(계명대 대명동캠퍼스 중심)과 쇼핑·문화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고, 이것이 기존에 이루어진 동-서축(수성구·달서구·달성군) 개발계획과 어울어질 때, 대구의 새로운 희망과 비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 대구의 광역교통망

일본은 신칸센 개통 후 도쿄 중심의 경제권이 오사카를 축으로 하는 간사이(關西) 지방으로 상당 부분 이전됐다. 주5일 근무 및 정보통신의 발달과 더불어 이동 시간의 단축으로 환경이 쾌적하고 거주비용이 저렴한 지방도시로 인구이동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4월 KTX(경부고속전철)가 개통됐을 때, 대구도 영남권의 중심도시로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대구경북연구원 이상용 박사팀이 기획예산처의 의뢰로 지난 8월 '경부고속철도 개통의 효과분석'을 조사한 결과, 내용은 실망적이었다. 병원(38%), 전시컨벤션(23%), 백화점(11%), 쇼핑(9%), 문화(8%) 등 고급 소비활동을 하기 위한 지역민의 수도권 유출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동대구역세권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들의 71%는 "KTX가 향후 기업활동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대구경북연구원 곽종무 연구위원은 "일본 사례에서 볼 때, 고속철 개통에 따른 영향은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잠재력과 대응자세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동남권의 '중심도시'를 자처하고 있는 대구. 하지만 대구의 광역 대중교통망에는 지역 최대 산업기반인 구미와의 연계가 빠져있다. 대구시는 봉무산업단지와 엑스코·대구유통단지를 활성화시킨다며 모노레일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구미를 빠뜨려 놓았다. 대구를 대표하는 첨단기업 대부분이 구미에 있는 삼성, LG 등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고, 대구가 앞으로 유치할 수 있는 중견기업 역시 이들의 협력업체일 가능성이 높은 데도 말이다. 구미의 첨단산업 기반과 구미·김천·칠곡권 인구를 무시한 채 엑스코와 대구유통단지를 활성화시키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범물동~범어네거리~동대구역~대구공항~봉무산업단지~엑스코'로 예정되어 있는 모노레일 건설구간은 ▷동대구역~대구공항~봉무산업단지~동구 지묘·백안동 노선과 ▷동대구역~경북대~엑스코~동서변동~북구 칠곡 노선으로 나눈 뒤, 향후 경북 칠곡과 구미로의 연계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지하철 2호선 경산연장과 동대구~영천 구간의 복선전철화, 경전철에 의한 달성 신도시 연결 등으로 광역 대중교통망을 형성함으로써 대구 주변도시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관문' 기능을 동대구역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동대구역에서 구미, 포항, 고령, 안동, 경주 등지와 연결되는 광역 교통망 체계를 바탕으로 '동대구 역세권특구'를 개발함으로써 비즈니스, 상업, 엔터테인먼트, 금융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타운을 건설해야만 대구의 중심성이 회복될 수 있다"면서 "주변도시의 산업기반을 배제한 중심도시 개념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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