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은 생전에 유난히 불공(佛供'공양)에 대한 법어를 많이 남기셨다.
공양의 본질을 '남을 위한 불공'으로 보았던 스님은 이기적인 기복(祈福) 공양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다.
큰스님은 타 종교의 이타(利他)적 공양을 본받으라며 이런 말씀을 했었다.
"갈멜 수녀원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수녀님들이 모여 무슨 제비뽑기를 한다고 합니다. 제비쪽지 속에는 양로원, 고아원, 교도소 등 어려움을 겪는 각계 각층 시설 이름이 씌어 있다고 하는데 어느 한 수녀님이 양로원 제비를 뽑으면 그분은 1년 내내 365일 자나깨나 양로원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고아원을 뽑으면 고아원을 위해, 교도소를 뽑으면 1년내 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겁니다. 모든 생활이 기도로 이뤄지는데도, 수녀님 자기네들을 위해서는 기도를 안 한다고 합니다. 조금도 안 한답니다.
이것이 참으로 남을 위한 기도의 근본 정신입니다. 아무리 남의 종교이지만 잘 하는 것은 본받아야 합니다. 더구나 그분들은 양계나 과자를 만들어 내다 팔아 먹고 산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은 자기들 노력해서 먹고, 기도는 전부 남을 위해 기도하고….
저쪽 사람들(가톨릭)은 내 밥 내가 만들어 먹고 남만 위해 사는데… 우리 불교도 자비가 남을 돕는 것이 근본이고, 불공이란 것도 결국 남을 돕는 것입니다.
불공은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정신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남을 돕는 것 세 가지 모두가 불공입니다.
버스 안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힘들게 서서 가는 것도 몸으로 하는 불공이고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기도해 주고 이끌어 주는 것은 정신으로 하는 불공이며, 거지에게 10원짜리 한 푼 주는 것도 역시 물질로 할 수 있는 불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몸, 정신, 물질 이 세 가지로 불공을 하려고 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불공거리요, 불공의 대상이 됩니다."
어느새 첫눈 내린 겨울 거리에 자선냄비가 걸렸다.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올 겨울에는 자선냄비 공양도 예년보다 쉽지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성철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스님도 참 답답하시네. 당장 내 배가 고파서 죽겠는데 자꾸 남의 입에만 밥을 떠 넣으라 하니 나는 굶어죽소?'
그러나 불교엔 인과 응보란 게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에도 그런 불교의 원리가 있습니다. 비료가 아깝다고 곡식을 팽개쳐 보십시오. 누가 먼저 배고픈가 자기부터 배가 고픕니다."
불가(佛家)에 '내가 쓴 돈만이 내 돈이다'는 말이 있다. 내 호주머니 내 통장에 들어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고 내가 좋은 일, 남을 위한 일에 '썼을 때' 그때 비로소 그 돈이 내 돈이라는 의미다. 호주머니나 통장 속의 돈은 그냥 들어만 있을 뿐 돈의 할 일을 않고 있으면 한낱 종이에 불과하다. 동전이 냄비 속에 떨어지는 순간 비로소 그 동전은 '내 돈'의 역할을 한 것이다. 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와 구세군의 냄비 속에 들어가 버렸으면 남의 돈이 된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 동전이 진정한 내 돈이고 오히려 아직 호주머니에 남아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닌 것이다. 남은 호주머니 돈은 자선냄비 걸린 길거리에서 소매치기당할 수도 있고 장농 속의 돈은 불타서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결국 내 돈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남의 것을 빼앗아 번 돈은 '쓴 돈'이라 해도 내 돈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옷을 벗어서 다른 사람에게 입혀 주는'식의 자선은 자선이 아닌 것이다.올 겨울 자선냄비 앞을 지날 때 한번쯤 성철 스님의 법어와 쓴 돈만이 내 돈이란 의미를 떠올려 보자.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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