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성 우륵 생애와 대가야 문화' 학술회의

오늘날 가야금의 초기 원형을 신라토우에서 나타나는 현악기 '고'와 일본 나라현 정창원 소장 '신라금'을 근거로 삼는 것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일 고령 대가야박물관에서 '악성 우륵의 생애와 대가야의 문화'를 주제로 열린 제4회 대가야사 학술회의에서 경북대 김성혜(42·사진) 강사는 "신라토우의 현악기=초기 가야금=정창원의 신라금=악학궤범의 가야금=오늘날의 정악 가야금이라는 학계의 등식은 출발선상에서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야금과 한국고대의 악기'라는 주제발표에서 "가야금의 기원을 후대인 15세기 세종실록과 악학궤범에 그려진 기록과 현재의 형태를 가지고 거슬러 올라가 가야금 연구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신라토우에 나타나는 악기는 그 제작시기가 4, 5세기이며, 가야금 전래 이전에 신라에서 원래 연주되었던 신라의 '고(琴)' 혹은 '신라고'로 밝혀지고 있다는 것. 또 가야금 전래 551년 이후 신라에서 가야음악 및 가야금이 신라음악에 전면적으로 부상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견해도 소개했다.

통일신라시대는 문헌기록이나 신라에서 건너간 정창원의 신라금으로 볼 때 가야금보다 기존의 신라금이 왕실의 중심 악기로 판단되며, 신라토우에 나타난 악기구조와 유사한 정창원의 신라금을 기존의 가야금으로 보는 통념과도 충돌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초기 가야금의 구조를 세종실록과 악학궤범 등에 나타나는 가야금과 유사한 악기로 보고 있다. 15세기 문헌에 그려진 가야금의 모습은 4, 5세기 신라토우의 현악기 구조와 823년 정창원 신라금 형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정창원 신라금을 가야금으로 해석하여 초기 가야금도 오늘날 정악가야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론 도출은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고려시대에는 가야금이 신라 삼현 가운데 하나로 전면 부상하게 되는데 고려시대에 기존의 신라금이 왜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고 가야금이 부상되었는지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사진: 고령 대가야박물관에서 열린 제4회 대가야사 학술회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