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로운 점포 개념 '블루오션' 추구"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

늦게 출발한 자가 앞선 자를 따라잡기는 매우 어렵다. 승자전취(勝者全取)의 무한경쟁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 기업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원히 앞서가는 자 또한 없는 법이다. '포천'지가 1957년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기업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1970년대까지 미국이 독점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일본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이제는 우리가 쥐고 있다.

결국 만년 1위가 없는 것처럼 영원한 꼴찌 또한 없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현실로 나타난 예를 기업의 세계에서는 흔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꼴찌가 모두 1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과 다른 무엇이 없는 꼴찌는 꼴찌에 머무를 뿐이다. 남과 다른 그 무엇을 구성하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를 관통하는 공통인자는 몇 가지로 축약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역발상'이다.

이승한(李承漢·59) 삼성테스코 사장은 이러한 역발상의 성공례를 가장 잘 보여준 CEO의 한 사람이다. 1999년 영국의 다국적 할인점 테스코와 삼성물산 유통부문이 합작해 설립된 삼성테스코는 창업 당시 기업 인지도에서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삼성테스코의 매장이름인 '홈플러스'를 아느냐는 물음에 소비자들은 '가구점이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창업 6년째를 맞는 지금 홈플러스는 매출 4조6천억 원에 시장점유율 19.4%를 차지하는 할인점업계의 강자로 변신했다. 지난 5년(2000~2004)간 연평균 매출은 67%, 연평균 이익은 150%나 성장하는 고속질주를 거듭했으며 오는 2009년 매출 10조 원, 점포 102개,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해 이마트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오른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 같은 변신이 가능했던 데에는 할인점의 기존 개념을 뒤엎어버린 이승환 사장의 역발상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할인점이란 물건만 싸게 파는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바로 월마트의 '창고형 할인점'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각인된 개념이었다. 국내 할인점도 대부분 이러한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이 사장은 '가치점'(Value Stor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다. 가치점이란 '고객이 좋은 품질의 상품을 가장 싸게 구매하면서 쾌적한 쇼핑환경과 기분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점포'를 말한다.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면서 처음부터 생각한 것이 다른 업체와 같이 원스톱 쇼핑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블루오션(비경쟁 시장)을 창출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할인점+편의시설'이었다. 바로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러가서 문화강좌를 듣고 은행일도 보며 식당, 세탁소, 사진현상소, 약국, 미용실 등의 편의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할인점이다. 이 사장은 이를 '자전거 이론'이라고 소개한다.

"기존의 할인점을 원스톱쇼핑이라는 바퀴 하나로 굴러가는 외발자전거라고 한다면 가치점은 문화공간과 편의시설이라는 바퀴가 하나 더 있는 두발 자전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성공은 할인점 내 문화·편의공간이라는 블루오션을 만들어낸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삼성테스코는 엄청난 투자를 했다. 문화센터만 전국 34개소에 교사 2천200명, 평균 강좌수 300여 개에 달한다. 여기에 들어간 돈은 1천500억 원이나 된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반기기도 하지만 꺼리기도 한다. 가치점 역시 그랬다.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1층에 '돈 안되는' 어린이 놀이터, 주민등록 민원서류 발급센터 등을 들여놓자 주위에서는 1년 안에 잘릴 것이라는 소리가 돌았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처음에는 의아해했던 고객들이 편의시설은 백화점보다 낫고 물건값은 보통 할인점보다 싸다는 것을 확인하자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사장은 또 홈플러스 성공의 이유로 한국사람의 '신바람'과 서구의 '합리성'이 결합된 삼성테스코만의 기업문화를 꼽는다. 이 사장은 이를 '신바레이션'(신바람+ration)이라고 부른다.

"한국사람은 동기부여만 잘 하면 들불처럼 일어나는 신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서구의 프로페셔널리즘과 합리성이 없이는 안됩니다. 삼성과 테스코의 합작은 바로 신바람과 합리성의 결합을 가져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계적 유통기업의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영환경은 삼성테스코가 이러한 성공에 만족하고만 있을 수 없도록 변하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삼성테스코의 "두발자전거를 벤치마킹해 이전의 블루오션이 이제 레드오션(경쟁시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기업비밀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다.

"저는 점포를 만들 때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점포를 생각합니다. 다른 업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접목시켜 새로운 점포의 개념을 만드는 블루오션 전략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칠곡군 왜관읍에서 태어나 영남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 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대구 얘기를 꺼냈다.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대구가 뒤에서 받쳐줬다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을 보냈고 첫 직장(제일모직)이 위치한 곳일 뿐만 아니라 홈플러스의 성공의 토양을 마련해준 곳이 대구이기 때문이란다.

이 사장 말대로 삼성물산이 테스코와 합작하기 이전인 1997년 홈플러스 1호점으로 오픈한 대구점은 98년 상반기 단일점포매출 세계 1위, 1999·2000년 전국 단일점포 매출 1위, 2000년 월평균 평당매출액 1위, 2001년 단일점포 매출액 1위의 신기록을 쏟아내며 홈플러스 바람을 일으키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이 사장은 "당시 대구점에 보내준 대구사람들의 성원은 정말로 폭발적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대구사람들이 홈플러스에 보내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앞으로 대구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부단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경훈기자 jgh0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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