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대한항공 파업 사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 사태가 11일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4일 만에 일단 종료됐다. 긴급조정권은 현저히 국민 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 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을 때 중앙노동위원장의 의견을 미리 듣고 노동부장관이 발동할 수 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그 후 30일간 쟁의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중앙노동위원회는 긴급조정권 발동 후 15일 동안 노사 양측을 상대로 자율적인 조정에 들어간 뒤, 조정이 성립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강제 중재 절차를 개시한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남발해 노사 간 자율 교섭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지난 7일 협상 결렬시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을 때 긴급조정권 발동이라는 '으름장'을 정부가 놓았기에 대한항공 사측은 이를 염두에 두고 노조와의 교섭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파업 돌입 후 열린 두 차례의 노사 교섭에서 조종사노조는 두 차례 수정안을 제시했고, 그 중 특히 10일 제시한 총액 기준 3.5% 임금 인상률은 노조의 당초 요구안인 6.5%보다 오히려 사측의 주장인 기본급 기준 2.5%에 가까웠지만, 사측은 파업 이후 단 한 차례의 수정안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노동계는 들고 있다. 곧 발동될 긴급조정권 때문에 사측이 노조와의 교섭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노조의 수정안 제안 역시 긴급조정권 발동 저지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긴급조정권의 발동이 늦추어졌을 경우 이른 시일 안에 노사 간에 자율적인 협상 타결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정부의 조기 긴급조정권 발동의 배경에는 지난 7월의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의 파업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노사 자율 교섭에 의한 협상 타결을 기대하여 정부는 파업 후 무려 25일을 기다렸지만 결국은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파업으로 8일부터 10일까지 단 3일간의 경제적 피해액만 1천894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국민 경제에 미치는 이같이 막대한 피해와 대외 신인도 악화를 고려하면 정부의 조기 긴급조정권 발동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노동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고임금 조종사들의 파업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비등하고, 이에 따라 항공 산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될 경우 반드시 파업 전에 노동 쟁의 조정 신청을 하거나 강제 중재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 사실상 불법 파업만이 가능해진다. 긴급조정권이 파업이 일어난 후의 사후적 조치라면, '필수공익사업 지정 및 직권중재 제도'는 사전적 예방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는 이유로 위헌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국제노동기구(ILO)도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의 지하철, 병원 등 필수공익사업에서의 대형 파업에서 보듯이 직권중재는 불법 파업과 강제 해결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낳는 경향도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노사 관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필수공익사업 지정 및 직권중재 제도는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 대신, 공익 사업에서의 파업 사전 예고 제도, 대체근로 제도, 최소업무 유지의무 부과 제도 등을 도입하여 파업에 따른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물론 긴급조정권과 이에 따른 중재 절차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 파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노사가 자기들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은 '국민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긴급조정권과 이에 따른 중재 제도는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제3자에 의한 중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재의 공정성이다. 필수공익사업 지정 및 직권중재 제도가 유지되더라도 중재가 공정하기만 하다면 공익 사업 노조들이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자꾸 파업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중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긴급조정권 발동 사태를 계기로 노사 양자와 국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노동 관계법과 규범이 하루라도 빨리 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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