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혁당 사형집행 관련문서 첫 공개

1975년 4월 9일 새벽 5시 30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사형집행 관련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민청학련·인혁당 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8명 중 유가족이 해외에 있는 2명을 제외한 하재완, 송상진 씨 등 6명의 형선고통지서와 사형집행명령서, 형집행지휘서 6장씩을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넘겨받아 12일 공개했다.

이 서류에 따르면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장과 서울구치소로 발송된 '다음과 같이 대법원에서 사형선고가 있었으므로 통지한다'는 형선고통지서는 1975년 4월 8일 오전 10시였던 대법원 선고보다 7시간 전인 이날 새벽 3시에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에 접수됐다는 소인이 찍혔다.

사법기관의 최종선고가 나기 전 이미 이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형이 확정돼 있었던 셈이다.

이 단체는 또 형선고통지서 등 관련서류의 조작의혹도 제기했다.

이 형선고통지서에 찍힌 서울구치소 접수 시간은 대법원 선고 4시간 뒤인 4월 8일 오후 2시이지만 누군가가 사인펜을 사용해 4월 8일의 '8'자를 '9'로 임의로 고쳐놨다.

국방부장관이 발부한 사형집행명령서 역시 서울구치소 접수 도장의 날짜가 손으로 쓴 펜글씨로 '8일'에서 '9일'로 고쳐져 있다. 정당한 이유로 4월 9일로 수정했다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통보가 사형을 집행한 뒤 9시간 정도 뒤(4월 8일 오후 2시∼4월 9일 새벽 5시 30분)에야 서울구치소로 도착했고 정작 사형을 집행했을 때는 형선고통지서도 없는 상태가 되는 '오류'가 발생한다.

접수날짜와 시간을 표시하는 소인을 살펴보면 날짜는 숫자로 찍혀 있지만 접수 시간은 원형 도장 둘레를 24등분한 시간표시 눈금을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식이어서 수정을 사실상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유진숙 부위원장은 "최종선고가 나기도 전에 선고통지서가 비상고등군법회의에 접수된 것은 정권에 의한 명백한 '사법살인'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유 부위원장은 또 "선고가 난 지 4시간 만에 서울구치소에 형선고통지서가 접수된 것도 행정 절차 등을 따져볼 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누군가 이 점을 의식해 8자를 9자로 조작했지만 미처 접수시간은 못 고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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