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나무 잎새는 떨어져 뿌리로 돌아갔다. 우두커니 서있는 거라곤 몇 안 남은 날을 거느리고 있는 12월이다. 그러니 바람조차 스산하고 얼음처럼 차갑다. 번쩍 정신이 드는 것이다.

이제 저녁 어스름 같은 음예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음예'란 어둠이 빛과 어울려 잔잔히 서리는 풍경을 말한다. 아스라하고 희미한, 가라앉는 그늘이다. 김지하 시인이 말한 '흰 그늘'이다. 어둠도 아니고 빛도 아닌, 어둠이 빛에 스며드는 듯한, 고요한 입술을 가진 어둠과 빛이 아스라이 뒤섞여 있는 듯한,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우리로 있는 그런 음예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겠다.

번잡하고 들끓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삶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앉아 쩔쩔매는 형국이다. 빛나는 생(生)이고 싶은 것은 열망에 그치고 말 것인가. 음예의 시간으로서의 삶. 나만의 음예 공간은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 지금 당장.

외롭고 정처 없는 삶의 그림자는 길다. 흰 그늘을 갖지 못한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이 시대는 당당한 삶, 당당한 '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입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아니면 팔아먹었거나.

"나, 여기 있어요." '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졌대도 더 기막힌 건 들을 수 있는 다정한 귀가 없다는 것이다. 바른 소리, 아파하는 소리, 자연의 소리 같은, 마땅히 들어야 하는 소리임에도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애처로운 너와 나.

"나, 아파요.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도와주세요. 당신을 사랑해요." 아, 말할 수 있는 입도 없고 들을 수 있는 귀도 없는 그래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굴려가는 세상에서 나라도, 너라도 지금, 여기 이 요지경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우두커니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내 안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찰 없이 삶이 나아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날마다 해마다 하는 반성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흰 그늘의 지평도 넓혀갈 것이다.

뻔한 거짓말, 금방 들통나 버리는 다짐과 후회일지라도 내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실한 것이 아닐까. 성찰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내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올해는 나의 그림자가 길고 고통스러웠다. 앓고 있는 긴 그림자가 나의 자화상이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삶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듯이 고통 속에 환한 햇살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생의 비밀이라는 것을 고통을 통하여 깨달았다.

삶을 생각하는 시간과 더불어 죽음을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그것은 죽음을 곁에 두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다름 아닌 삶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희망을 품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희망은 부화하여 홀연히 세상 밖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노진화('생각과느낌'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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