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에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가 '훙커우(虹口)의거' 이틀 전 거사장소를 답사한 뒤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유언으로 남긴 시의 일부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는 윤 의사가 거사 장소인 상하이(上海) 훙커우공원을 답사한 후 비장한 심정으로 쓴 이 유언의 친필 사본을 윤 의사 순국 73주기를하루 앞둔 18일 공개했다. 유언시 내용은 그동안 일부 알려졌지만 친필유서의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처음이다.
유서가 적힌 윤 의사의 수첩 원본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해방 후 갖고 귀국한 뒤 해외에 유출됐다 다시 돌아와 현재 서울 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지만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 유서는 유 의사가 거사 이틀 전인 1932년 4월27일 훙커우공원 답사 후 숙소인 동방공우(東方公寓)에서 김구 선생의 요구로 쓴 것으로 흘겨쓴 필체와 고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윤 의사는 김구 선생에게서 이력서 작성을 요구받고 이력서와 함께 거사가(擧事歌), 조선청년단에 대한 당부의 시,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의 시, 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 등 4편의 시를 2시간 만에 써내려 갔다.
윤 의사 조카인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윤주 이사는 "달필로 알려진 윤 의사가흘겨 쓰고 고쳐 쓴 유언을 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말했다. 그는 "올해가 광복 60주년인데도 아직도 친일청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다 역사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독립정신과 '무덤에 찾아와 한 잔 술을부으라'는 유언을 되새기자는 뜻에서 친필유서를 처음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거사 직후 현장에서 일제 군경에 체포돼 군법회의에넘겨져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오사카(大阪)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그 해 12월19일총살형으로 순국했다. 기념사업회는 19일 오전 서울 효창공원 윤 의사 묘역에서 순국 73주기 추도식을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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