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후 40년

영화보다 더 슬픈 '윤복이의 삶'

'아직도 저 하늘에는 슬픔이 어려 있을까?'

꼭 40년 전인 1965년. 대구는 물론, 전국이 울었다. 40대 중반 이상이면 누구나 기억할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감독 김수용)' 때문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30만 명을 스크린으로 불러모으면서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웠던 이 영화의 배경은 대구. 가난에 찌든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윤복(당시 13세·대구명덕초교 4학년) 군의 일기가 이 영화의 뿌리였다.

이후 강산이 네 번 변했다. 영화 제작 40주년을 맞아 많은 사람이 이 영화 주인공들의 그 후를 궁금히 여겼다. 윤복이와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달 초부터 보름가량 틈틈이 영화 이후 주인공들의 궤적을 쫓아봤다.

△어떤 영화이기에=6·25 전쟁의 참화를 채 벗어나지 못한 1960년대. 큰길 가에도 우마차가 다니고 집집마다 끼니 걱정을 해야 하던 어려운 시절.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허름한 주택에 세들어 살던 이윤복 소년의 가족 역시 현실이 고달팠다.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찌들어 살았고 어머니는 윤복이가 초교 1학년 때 집을 나가버렸다. 그때부터 동생 셋을 돌보는 일은 윤복이 몫이었다. 윤복이는 깡통을 들고 이집 저집 밥 동냥을 하러 다녀야 했고, 껌팔이와 구두닦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윤복이의 얘기가 알려진 것은 일기장 덕분. 힘겨운 일상을 또박또박 적어나간 윤복이의 일기를 담임 선생님이 발견한 것. 당시 명덕초교 선생님들은 1963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윤복이가 적은 일기를 1964년 책으로 펴냈고, 이후 화제가 된 윤복이 일기장을 바탕으로 김수용 감독이 1965년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 제목은 일기 속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이 영화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고, 일본 등 동남아 지역에서도 상영됐다. 영화가 나온 뒤 대구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격려편지와 성금이 답지했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편지가 날아들었다. 봉투 겉면에 '대한민국 윤복'이라고 선명하게 적힌 편지들이었다. 윤복이가 살던 동네에서 쌀집을 운영해온 김덕곤(71) 씨는 그 시절을 기억하며 "갑자기 영화 찍는다고 외부 사람들이 동네에 엄청 몰려왔다"고 회고했다.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1970년 속편이 나온 데 이어 1984년과 2002년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때 이후=영화 제작을 계기로 윤복이네는 일어섰다. 성금이 들어오면서 윤복이네는 작지만 집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집을 나갔던 어머니도 돌아왔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끊지 못했고 어머니는 다시 집을 나갔다. 집안 형편은 다시 어려워졌다.

결국, 윤복이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몇 군데 대학에서 입학금과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의가 있었지만,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는 대학 입학이 사치였다. 고교 졸업 후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배추장사를 하며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

성년이 된 윤복 씨. 그는 '행복'보다는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제목처럼 '슬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1984년 한 제지회사에 입사해 대구영업소에 근무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간염 악화로 숨을 거뒀다. 1990년이었다.

윤복 씨의 눈물어린 뒷바라지를 받았던 동생들. 형의 도움 덕택이었을까. 이들은 현재 모두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다. 남동생 윤식(47) 씨는 서울의 한 건축회사에 다니고 있고 여동생 2명도 결혼, 가정을 이뤘다.

취재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 동생 윤식 씨의 오랜 친구 박원규(47) 씨는 "윤복이 형은 어릴 때부터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워 믿음직했다"며 "주위 사람들도 모두 좋아했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하늘을 쳐다보니까 참말로 맑았습니다. 아무리 구름을 찾아보려고 해도 구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도 저 하늘처럼 말끔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요.(1964년 12월20일 일기 중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40년 전 영화를 추억하고 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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