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1961~ ) 겨울 강가에서
이 시의 구도는 매우 단순하기 짝이 없다. 무엇이냐 하면 눈이 강물 위나 강가에 내리는 과정을 다룬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작품을 읽어 가는 재미가 범상치 않다. 시인이란 본디 모든 무생물을 생물로 보고 그에게 말을 걸며 대화를 나누는 물활론자(物活論者)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눈발이 강물 위에 내려서 금방 녹아버리는 그 광경을 강이 너무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엮어낸다. 이때 눈발은 어린 소년의 표상으로 떠오르고, 강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초겨울 강물이 그렇게 소리를 요란히 내는 것은 어린 눈발을 보호하기 위한 강의 배려라고 시인은 말한다. 강가에 살얼음을 얼게 한 것도 어린 눈이 내릴 때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강의 배려라고 시인은 정리한다. 과학적 관점으로는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지만 시로서는 너무도 재미있고, 즐거우며, 애틋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안도현 시인의 창작 비결이 이 작품 한 편에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보면 되겠다.
흘러간 1970년대 후반, 경주 신라문화제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심사위원석으로 인사를 왔던 까까머리 고교생 안도현의 해맑은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시인으로 문창과 교수가 된 안도현!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의 가슴은 분명 따뜻할 것이다.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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