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 자동차 부품산업 어디로 가야 하나

경영혁신 이끌 선도기업이 없다

전자·통신 분야에 이어 대구·경북을 먹여살리는 주력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부품산업이 국내적으로는 서해안권과 부산·경남·울산권의 도약에 따른 상대적 위축 국면에 놓여 있고,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조달 및 경쟁 체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의 비판적 분석이 나왔다. 최근 환경변화에 따른 지역 자동차부품업체의 대응을 살펴보고,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산업의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모색해 본다.

▨환경변화와 지역업계의 대응

1990년대 이후 세계 자동차산업은 생산능력 과잉에 따른 경쟁 격화로 완성차업체 간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가 확산되고, 비용절감을 위해 부품의 외주화·모듈화·플랫폼 통합 등이 추진됐다. 이에 따라 과거 10년간 세계 자동차부품업체는 3만 개에서 8천 개로 줄어들었고, 국내에서도 1차부품업체의 경우 1997년 1천339개에서 2004년 913개로 감소했다.

플랫폼 통합으로 부품의 공용화·표준화가 촉진되면서 부품업체 간 수주경쟁 및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한 대형화가 계속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800여 개인 현대·기아차 납품업체는 300여 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또 환경·안전규제 강화와 차량제어의 전자화, 안전·편의 시스템 확대, 정보통신기능 강화 등 자동차부품의 전장화(電裝化) 등은 자동차산업의 기술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1990년 이후 국내 완성차 공장 및 부품단지가 아산(현대·1996년), 군산(대우·1997년), 전주(현대·1995년) 등 서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대구·경북 부품업체의 수요기반을 약화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구·경북 업체들도 규모의 중·대형화와 글로벌화, 조달체계의 변화 및 거래선 다변화를 진행해 왔다. 부품업체 수가 대구지역(991개 → 423개)을 중심으로 1997년 1천266개에서 2004년 808개로 36.1% 감소하면서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기업은 7.3%에서 12.1%로, 300인 이상 대기업은 1.3%에서 1.7%로 비중이 늘어났다. 한국델파이, 상신브레이크, SL, 평화발레오, 평화산업, 동해전장 등 선도업체들을 중심으로 해외 직수출을 확대하고 거래선을 다변화하는 한편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직접투자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의 문제점

그러나 대구·경북은 1차업체 비중이 12.1%로 전북(39.2%), 충남(23.1%)은 물론 수도권(16.9%)과 부산·경남·울산(16.6%)에 비해서도 아주 낮은 편이다. 국내 10대 부품기업 가운데 지역업체는 한국델파이가 유일하고, 모듈업체도 한국델파이, 평화정공을 포함해 2, 3개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대구·경북은 부품조달체계에서 중심핵 역할을 할 수 있는 선도기업(Leading Company)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모듈화, 저임금 개도국의 제조기술 향상으로 인해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부품설계능력'과 글로벌 조달 확대에 대응한 '국제공인품질인증 획득' 등 최근 변화에 대한 적응 노력과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시장 진출에 필수요건이 될 ISO/TS 16949(2006년 12월 15일부터 적용) 품질인증을 획득한 지역업체는 80여 개에 불과하고, 지역의 대표적 자동차부품업체인 한국델파이, SL 등의 R&D(연구개발) 투자비율(1.6~2.8%)조차 선진국 기업(6~8.5%)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향후 자동차부품시장은 전장 부품이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장화 관련 지역의 1차 부품업체는 한국델파이, 동해전장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것도 핵심 첨단부품보다는 램프, 전기 배선장치 등 전통적인 전장부품 생산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다.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첨단전장부품 분야(스티어링시스템, 충돌방지시스템, 타이어압력감지장치, 텔레매틱스 등)에서 지역업체들이 소외되어 있고, 하이브리드 부품과 연료전지, 전자신호제어 시스템을 비롯한 미래형 친환경 자동차부품 개발을 위한 투자도 지역기업 차원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향후 과제

대구경북연구원 홍철 원장은 "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그래도 높다"면서 "만일 교통안전공단이 영천으로 오고, 이와 함께 주행시험장과 드라이빙스쿨, 자동차부품혁신센터(가칭) 등이 들어선다면 대구~경산~영천~경주~울산을 잇는 초광역적 '오토밸리' 구상의 실현이 훨씬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정규석 원장도 "미래형 자동차 관련 연구는 지역 산업과 경제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DGIST의 핵심연구 분야로 욕심을 내고 있다"고 말하고, "과연 이 분야의 국책사업을 대구경북으로 가져올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는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실천 과제로 ▷자동차부품업체의 자생적 경영혁신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간 동반자적 협력관계(공동개발 등) 구축 ▷중앙 및 지방 정부의 효율적 정책지원 ▷부품기업의 구조조정 지원 ▷수출 및 통상지원 강화 ▷기업의 성장력을 중시하는 '관계형 대출'을 확대하는 것을 포함한 금융지원 강화 등 6가지로 정리했다.

◇ 대구·경북이 국내 자동차부품 부가가치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9%로 수도권(28.9%)과 부산·경남·울산권(28.1%)에 이어 3번째다. 포항 철강, 구미 전자·통신, 창원 기계, 울산 완성차 등 연관산업이 주변에 잘 발달되어 있고, 양질의 저임노동력과 편리한 교통에 힘입어 국내 3위의 자동차부품 집적지로 성장한 것이다. (1996~2003년 중 대구의 월평균 임금수준은 121만 원으로 전국 광역시 가운데 가장 낮았다)

부가가치 규모(2004년)는 2조3천억 원으로 1990년 4천억 원에 비해 5.6배나 늘어났고, 지역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도 같은 기간 4.9%에서 5.5%로 확대됐다. 특히 대구는 자동차부품산업 비중이 6.7%에서 12.7%로 2배가까이 증가했다. 이 기간에 전자·통신산업의 비중이 12.8%에서 37.4%로 급증함에 따라 섬유(23.0% → 6.6%), 철강(23.4% → 15.8%), 기계(6.1% → 4.7%) 등 대부분 산업의 비중이 크게 감소한 점을 고려할 때, 자동차부품산업은 대구·경북이 놓칠 수 없는 주력산업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업계의 경쟁력은 어느정도나 될까.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분석한 결과, 가격을 제외한 디자인, 생산설비, 설계기술, 대응능력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에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아웃소싱의 일반화로 글로벌 조달 및 경쟁 체제로 재편되어 가고 있고, 한일FTA(자유무역협정) 등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업계는 성장하고 있지만, 분명 위기국면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용어정리

▷모듈화:수많은 부품을 몇 개의 꾸러미 부품(모듈)으로 통합하는 것을 말함.

▷플랫폼 통합:구동체계, 차축체계, 연료체계 등 차의 기본구조를 이루는 뼈대(플랫폼)를 차종 간 공유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는 전략.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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