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7월 대구 달서구 진천동에서 발생한 정신지체 장애아 김모(12) 양 살해 사건. '잡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범인을 붙잡은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몽타주'였다.
피해자의 언니가 범인을 본 순간은 불과 '2초'. 당시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던 서용석 경사(40·현 대구 북부경찰서 과학수사팀)는 목격자의 단편적인 기억을 토대로 용의자 몽타주를 그려냈다. 경찰은 이 몽타주를 들고 상인동 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범인의 행적을 쫓았다.
사건의 실마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풀렸다. 몽타주를 본 이웃 아주머니가 자신의 집 세탁기에서 속옷을 훔쳐가던 엄모(41) 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 경찰은 용의자의 인적 사항을 파악한 뒤 이내 붙잡았다. 범죄 발생 10일 만이었다.
서 경사는 대구 현직 경찰로는 유일하게 손으로 직접 몽타주를 그리는 '아날로그' 몽타주 전문 요원이다. 목격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연필로 꼼꼼하게 몽타주를 그려내는 것. 컴퓨터 포토샵을 이용해 눈·코·입·볼·귀·이마·턱·얼굴 윤곽 등을 조합해내는 방식과는 달리 "손으로 그리면 좀더 세밀하고 원하는 대로 인상을 잡아낼 수 있다"는 게 서 경사의 설명이다.
대구대 미대를 졸업한 그가 경찰에 투신한 건 지난 1990년. 남다른 손재주를 과시했던 그가 과학수사에 뛰어든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가 처음 그린 몽타주 주인공은 지난 2000년 12월에 대구 동구에서 발생한 경찰총기탈취사건 용의자 차원갑. 그가 실물과 거의 흡사하게 그려낸 몽타주 6만 장이 전국 경찰서 및 아파트 공사장 등지에 집중 배포됐다.
피해자가 목격자일 경우, 용의자의 인상을 쉽게 기억해 내지만 단순 목격자일 경우 몽타주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때문에 목격자의 진술에 완전히 심취, 마치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상상해야 몽타주를 그릴 수 있다는 것.
5년간 대구경찰청에 근무하면서 서 경사가 그린 몽타주는 100여 장이 넘는다.
"몽타주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애매하게 보여요. 특히 목격자가 어떠한 상황에서 용의자를 봤느냐에 따라 눈이나 입의 크기가 실물과는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2년 전 북부경찰서 과학수사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타고난 섬세함을 바탕으로 현장 감식에서도 일가견을 보이고 있다. 팀원들과 함께 33건의 검거 실적을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4일에는 '으뜸과학수사팀' 상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가학수사'가 아닌 '과학수사'의 시대'"라며 "보다 체계적인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면 수많은 미제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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