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1시 대구 달성군 옥포면 비슬산 산자락에 마련된 공동묘지.
죽음을 앞둔 사형수들의 고민을 들어주던 스님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박삼중(64·부산 자비사) 스님이 터벅터벅 발걸음을 재촉했다. 봉분도 없이 비목으로만 겨우 주인을 가릴 정도의 무덤들이 수없이 흩어져 있었다. 대구교도소 무연고 사형수들이 묻혀 있는 곳.
"이 곳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한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1년에 한 번씩 대구교도소 재소자들이 찾아와 성묘를 하는 것 외엔 아무도 찾지 않는 통곡의 땅이지요."
수많은 무덤을 헤치던 스님은 한 낡은 비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날도 이랬지요.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였어요. 하지만 가슴은 얼마나 시리던지…."
'사형수의 대부'로 불리는 스님은 1979년 12월 29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한 젊은이를 보냈지요. 옥중에서 참새를 키우며 죄를 뉘우치던 사형수였는데. 형장에서 '스님과의 약속대로 참새를 고향인 허공으로 날려보내고 왔다'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스님이 그를 잊지 못하는 까닭은 또 있다. "형장에서 마지막 소원이라며 다섯 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했어요. 이승에서는 못 뵙지만 무덤 속에서나마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다며 고개를 떨구더군요."
스님의 '엄마 찾아 삼만리'는 벌써 26년째다. 사형수 어머니의 고향인 경북 군위군을 시작으로 전국을 떠돌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드라마 '수사반장' 등 언론의 힘도 빌려봤고, 책도 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사생아로 태어난 죄로 어린 나이에 모친과 생이별을 하고, 이복형제들에게 갖은 설움과 핍박을 받으며 성장한 그였으니 얼마나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겠어요."
"그의 기일인 오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한다"는 스님은 묘비를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늘도 혼자 오셨나요'라는 실망 섞인 그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젠 나이도 들고 지병도 있어 힘에 부칩니다. 저세상에서 그를 어떻게 볼지 면목이 없군요."
잡초만 무성한 그곳에는 바람도 잔 듯, 풀잎이 고개를 숙인 듯했다. 그를 뒤로 하고 내려오던 스님은 "내년엔 반드시 모친을 모시고 함께 와야 하는데…"라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
지금까지 300여 명의 사형수를 만났다는 박삼중 스님은 "사형은 제도에 의한 폭력"이라고 했다. "사형으로 사회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요. 범죄에 대한 극단적인 처벌은 오히려 흉악한 대형범죄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스님은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사형을 집행한 이후 8년째 집행을 중지하고 있지요. 국제사면위원회는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합니다. 그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그날이 빨리 와야겠지요"라며 빙긋이 웃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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