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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초대사장 故 최덕홍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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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선을 옥죄던 전쟁의 공포가 대구에서 멀어질 즈음 천주교 대구교구 유지재단(오늘날 천주교 대구 대교구)이 대구매일신문(大邱每日新聞)을 인수했다.

신문사의 경영권이 천주교 대구교구로 넘어오기까지는 곡절이 많았다. 신문사 경영에 한계를 느낀 당시 이상조 사장이 새 경영주를 찾아 나섰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던 것이다. 신문사를 경영할만한 인품과 재력을 가진 인물 모색도 어려웠거니와 하루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전쟁판에 돈벌이도 되지 않는 신문을 무슨 배짱으로 떠맡겠느냐는 반응들이었다.

고심 끝에 찾은 사람이 바로 천주교 대구교구 최덕홍(崔德弘) 주교였다. 처음에는 최 주교 역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럴 형편이 못된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이 사장의 집요한 설득에 최 주교의 입에서 승낙이 떨어졌다.

대구매일신문의 경영권 인수 과정에는 교구내의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일부 성직자들은 "성당도 못지어 쩔쩔매는 판에 신문사같은 세속사업을 무엇 때문에 하느냐"고 반대했다. 찬성하는 의견도 있었다.

신문사 인수 후 주간으로 일한 최민순 신부는 "시대가 개명해 가니 문화사업도 필요하다. 신문 하나가 학교 열개 운영하는 것 보다 낫다"고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해서 회계법상 1950년 10월 1일 천주교 대구교구가 신문을 정식 인수·인계하게 됐다.

대구매일신문이 새 주인을 맞아 오늘의 '매일신문'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으며, 그 주역이 최덕홍 주교였다. 신문사를 인수한 최 주교는 신문사의 기틀 다지기에 나섰다. 우선 한 사람이 운영하던 신문사를 주식회사로 바꾸는 일에 착수했다.

전쟁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1950년이 저물어 가던 12월 10일 주식회사 매일신문사 창립총회가 열렸으며, 최덕홍 주교가 대표이사로 선출됐다. 최 주교가 매일신문사 초대 사장으로 공식 취임한 것이다.

최 사장은 다음해 1월 첫 기자공채를 시행하고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최 사장은 이어 소년매일 창간(52년 월), 제1회 전국남녀웅변대회(52년 7월), 제1회 경북도 남녀중고등대항 육상경기대회(53년 6월), 취재기자 첫 해외특파((54년 4월), 공명선거 표어 공모(54년 4월) 등을 통해 신문의 역량을 높이고 이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렇게 오늘날 매일신문의 초석을 다지던 최 주교는 54년 12월 14일 갑자기 타계했다. 향년 53세. 전시(戰時)경영의 시련에서 벗어나 도약을 서두르던 매일신문으로서는 최 사장의 타계가 충격이었다.

'한국의 어두운 곳을 비추던 큰 촛불이 꺼졌다.... 천지가 아득하니 선생을 추모하는 슬프고 안타까운 눈물을 행여나 알아주소서....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하나의 조그만 촛불이 되고, 한 조각의 정신이라도 계승하고자 언론보국(言論報國)에 미력을 다할 것을....". 15일자 매일신문 사설란에 실린 추모사이다.

조향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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