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말, 말, 말들…

사회가 동요하고 정치권이 요란스러워지면 새로운 '말'들이 숱하게 생산된다. 신조어를 만들어 새 상황에 대한 감정을 극명히 표현하려다 보니 빚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언론 특히 신문들이 그러는 경우가 있고, 정당의 대변인들이 새 말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말 황우석 교수팀 사태 발생 때는 그와 관련된 온갖 말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그 이름을 딴 폭탄주까지 생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각 발표가 있은 후 한나라당의 대변인은 노 대통령에게 '독오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유시민 의원이 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노해민 정권'이라고 평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새 개념을 만드는 것은 새 지식을 완성시키는 일이라고 했던 어떤 주장이 기억에 남아 있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라면 흘러넘치기 시작한 올해의 말들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터. 그래서 연말이 되면 신문들은 그런 말들을 주워 모아 지나온 한 해의 결산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말이나 글이나 근본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이쯤에서 연암 박지원의 의견 한 구절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공작관문고'의 머리말이 그것이다.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다. 옛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가르침을 찾으며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화공을 불러다 초상을 그리면서 용모를 고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 하더라도 참다운 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글을 짓는 사람이라고 해서 또한 무엇이 이와 다르랴."

◇분식하려 들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당시 글 풍조에 대한 비판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는 본래의 전하려던 뜻이 모습을 잃을지 모른다는 일반론으로 읽어도 좋다는 충고 역시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차라리 "지나치게 말 잔치로 흐르는 것은 사태를 보는 시각을 단순화'감정화시킬 수 있다"는 경계로 듣고 싶기도 하다. 연암 식의 글투는 '문체 반정'이라는 체제 보위적인 조치로 인해 짓밟혔다. 지금 이 시점의 요란한 말들 또한 누가 뭐래도 갈수록 번성할 듯싶기도 하다. 제대로 판단해가며 듣는 과업은 그 말을 '소비'할 일반 시민들 몫이 된 셈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kore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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