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지혜로 자기진화

우리는 가끔 아프리카 초원에 기이하게 솟아있는 흙기둥을 만나게 된다. 개미집이다. 건기가 시작되면 초식, 육식 동물들은 죽거나 혹은 물을 찾아 초원을 떠난다. 곧이어 대규모 자연화재가 발생하고 죽은 짐승들의 몸을 검게 태운다.

하지만 외벽이 약간 그을린 개미집은 미동도 하지 않으며 화마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개미들의 행렬로 초원은 활력을 되찾게 된다. 개미들은 어떠한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개별 개미에게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여왕개미가 중앙집권적 리더쉽을 발휘하여 무리를 조직화하고 이끄는 것이 아니다. 죽도록 개미 알만 낳을 뿐이다.

개미집을 설계하고 역할을 분담시키고 위기에 대처하면서 개미사회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어떤 특별한 존재나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개별개미는 어떤 전체적 설계도에도 관심 없고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는 순간 개미조직은 와해되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하면서도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개미는 오직 자기를 스쳐지나가는 이웃하고만 상호작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기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페로몬의 양을 통해 10여가지 정도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정보의 기하급수적 파도타기가 이루어진다. 이는 인체의 뇌세포의 정보전달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곳에도 사고와 판단의 출발이 되는 독재자 세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뇌는 가공할만한 지각력과 연산 및 판단능력을 발휘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다. 열이고 백이 된다.

인터넷이란 개미집과 네티즌이란 개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전체를 상상하고 해석하고 설계해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뿐이다.

낡고 설익은 이데올로기, 도그마의 설계도 한 장 들고 속절없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은 오만한 이성의 광기에 불과하다. 개미의 자기조직화처럼 우리 인간도 자기조직화 한다. 그것도 엄청난 지식정보를 생산 가공하면서.

내가 안달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지식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끊임없이 생생화육하는 전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앞에 하나의 창조적 평등자로서 겸손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전체로 자기조직화된 지식은 내속으로 들어와 지혜로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