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환율 하락, 위기로 볼 게 아니다

연초부터 원-달러 환율의 하락세가 심상찮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 이후 8년 만에 최저치인 980원대로 떨어졌다. 정부는 어제 긴급 환율 대책회의까지 가졌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주거용 해외 부동산 취득 완전 자유화, 개인 해외 직접투자 한도 확대 등 만성화한 외환 공급 과잉 해소책이 고작이었다. 사실 묘안이 나올 수도 없다. 환율 급락에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경고를 전달하는 회의였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은 수출에 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수입 물가의 하락으로 최상층에 이어 중산층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소비 심리 회복에는 도움이 된다. 따라서 환율 하락에 대한 지나친 위기감 조성은 내수경기 회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과도한 수출 의존을 줄이고 수출과 내수의 균형 성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환율 하락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물론 환율의 급격한 하락은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므로 외환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는 선에서 조정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은 되레 시장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 과거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환투기 세력의 공격에 돈만 잃고 효과도 없었다.

어차피 환율 하락은 대세다. 2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로 인해 2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100억 달러 규모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한 마당이다. 외환 부족으로 국가적 위기까지 맞았던 시절이 엊그제여서 환율 하락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출 주도의 '외끌이 성장'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성장을 더 이상 도모할 수 없다.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의 격차만 커졌다. 정부가 내수 살리기에 목을 맨 것도 수출의 성장과 고용 기여도가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 아닌가.

수출 기업들은 세 자릿수 환율에 대비해 대외 경쟁력을 키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다만 대기업들은 환율 하락을 견딜 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은 별도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환율 하락을 견디지 못하는 한계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대책이 돼선 곤란하다. 이는 중소기업 구조 조정에도 역행한다. 달러 유입은 줄이고 유출은 늘리는 장단기 수급 조절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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