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을 아십니까? 우리나라 근대 유화 가운데 가장 걸출한 작품은 무엇일까? 1998년 '월간 미술'이 미술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소 뜻밖에도 이인성이 24세의 약관에 그린 '경주의 산곡에서'와 김관호의 '해질녘'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더구나 그 가운데 이인성은 작가별 득표에서도 이중섭·김관호·오지호·박수근·이쾌대 등 쟁쟁한 화가들을 모두 물리치고 김환기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예술을 절대적인 등수로 매길 수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이와 같은 견해를 존중한다면 이인성은 우리나라 근대 유화를 대표하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가만, 세잔이나 고갱은 알겠는데, 이인성이라?
이인성은 1912년 대구에서 태어나서 한국 근대 미술을 개척한 그야말로 '천재 화가'였다. 그는 인상파를 비롯한 서구의 회화 사조들을 수용하되, 이를 자기화하고 토착화해 한국적 정감이 물씬 풍겨나는 다수의 걸출한 작품들을 남겼고, 특히 계산성당 등 대구를 소재로 한 적지 않은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다.
근대 미술사의 기린아였던 이인성. 하지만 그는 1950년 11월 술 취해서 귀가하다가 사소한 말다툼 끝에 경찰이 쏜 총탄을 맞고 39세의 젊은 나이로 돌연 절명해 버렸다. 일개 '환쟁이'에 불과한 사람을 세도가의 일원으로 착각한 경찰이, 뒤늦게 격분하여 집에까지 찾아가서 그의 이마에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던 것이다.
훗날 소설가 최인호는 그의 죽음을 소재로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라는 작품을 쓰고 "천재를 죽인 것은 총도 경찰관도 아니라, 위대한 화가를 '환쟁이'로 천시하는 사회의 구성원 모두"라며 가슴 아파했다.
이인성이 비명에 간 지도 어언 50년이 지나갔지만, 화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많은 화가들이 여전히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인성의 죽음이 자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성의 그림은 세상의 여백 도처에 걸려 아무런 불평 없이 이 험한 사회를 밝혀주고 있다. 어느 은행에서 대량으로 만든 달력에도 그의 작품이 달마다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올해 가는 곳마다 그의 그림들을 만나는 특별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다만 경찰이 쏜, 총알이 죽인 그의 그림을….
계명대 사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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