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금융詐欺

이탈리아 동쪽 아드리아해 건너편의 알바니아가 1997년 내전으로 불바다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인구 350만 명의 이 유럽 최빈민국이 벌집 쑤셔놓은 듯해진 건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니었다. 단순히 피라미드식 금융사기 사건이 나라를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피해자가 전체 인구의 7분의 1 정도였고, 피해액은 국민 총생산의 30%에 이르렀다니 가히 온 나라가 사기를 당한 셈이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사기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신라 4대 왕 석탈해(昔脫解)가 바다 건너 서라벌에 온 뒤 호공(瓠公)의 집을 차지한 일이란 설이 있다. 탈해는 집 옆에 몰래 숯과 숫돌을 묻어 놓은 다음 대장장이였던 조상이 살던 곳이라고 증거를 제시했다. 남해왕은 그가 지혜롭다고 맏사위로 삼았다고 '삼국유사'는 전하지만, 그게 과연 자랑할 만한 지혜였는지….

◇1970년대에 수십억 원을 부정 대출받아 현대판 '금융 사기의 원조'라고 일컬어졌던 박영복(69) 씨가 또 1천억 원대의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고 한다. 인천지검은 가짜 무역회사를 차려놓고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그를 구속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야말로 '제 버릇 남 주나'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항암 효과가 있다는 '아가리쿠스 버섯'의 가공 무역 독점권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면서 사기 행각을 벌였다. '투자 금액의 5% 이상을 수익금으로 보장해 주겠다'는 게 미끼였다. 이 '미끼'대로 늦게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5%의 이익금을 붙여 돌려줬다. 하지만 나중에는 투자한 사람의 돈을 모두 떼어먹는 방법으로 가로채기를 했다.

◇1975년 수출신용장을 위조해 74억 원을 부정 대출받은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복역하는 등 22년이나 교도소 생활을 하던 그가 2001년 12월에 출소했으니 4년 만의 '제 버릇 드러내기'인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으나 이에 눈이 어두워지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결국 자신도 망가지게 마련이다. 쇠고랑을 찬 장본인은 말할 나위 없지만, '돈 놓고 돈 먹기'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도 한심하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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