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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의 감독들-(1)마이슬·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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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대회의 역사에서 수많은 명장들이 명멸해 갔지만 역사책에 영광된 이름을 남긴 이들은 많지 않다. 창의적인 전술과 노련하게 선수들을 다루는 솜씨로 축구사에 우뚝 선 감독들은 이미 전설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현대 축구 속에는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축구의 변방으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오스트리아 축구팀은 1930년대에 연승을 거듭하는 '기적의 팀'으로 통했고 이는 후고 마이슬 감독에 의해서 가능했다. 젊은 시절 은행원으로 일하던 마이슬은 틈틈히 축구 기술을 습득하는 등 축구에 대한 열정을 이길 수 없어 은행 일을 그만두고 1912년 31살의 나이로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다.

1차대전으로 축구를 잠시 접은 마이슬 감독은 1919년 다시 대표팀을 맡았고 끊임없이 전술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축구는 조직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나 마이슬 감독은 친구이자 선구적 축구 전략가인 영국인 지미 호건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나갔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마이슬 감독의 구상에 따라 짧은 패스를 통해 상대 진영으로 나아가는 전술을 구사했다. 롱 패스에 따라 선수들이 이리저리 내달리는 축구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러한 축구는 2-3-5, 혹은 W-M 포메이션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창조적인 중앙 수비수의 역할을 강조했다.

오스트리아 팀에는 마이슬의 전술을 빛나게 하는 마티아스 진델라르가 있었다. 가늘고 연약한 몸매로 '종이 무용수'로 불렸지만 탁월한 기량을 지닌 진델라르의 활약으로 오스트리아는 1931년 4월부터 1934년 6월까지 31경기 중에서 3경기만 패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대회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벌이고도 0대1로 패배, 영광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오스트리아를 이긴 이탈리아는 193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와 193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를 2연패, 축구 강국으로 떠올랐다. 2연패를 이끈 비토리오 포조 감독은 마이슬 감독의 친구이자 라이벌로 수비가 강한 이탈리아 축구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는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선수들을 대표로 소집, 강력히 통제하면서도 유머로 팀 분위기를 살려 화합을 이뤄나갔다.

1934년 월드컵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오스트리아와 체코에 고전하다 승리한 포조 감독은 1938년 월드컵 대회에서 팀을 더욱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 역시 2-3-5와 W-M 전형을 채택하면서 두 명의 수비수에다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하는 중앙 수비수를 두는 경기 운영으로 자신의 독창성을 발휘했다. 이는 수비를 단단하게 하면서 빠르게 역습을 가하는 형태인데 당시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던 경기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탈리아 축구는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전술의 발전에 흐름을 맞추면서도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번에 역습하는 '포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그는 이탈리아 축구의 아버지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사진 : (위로부터)후고 마이슬, 비토리오 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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