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태 광주시장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분이다. 전'현직 대구시장들과는 너무나 다른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지난해 5월쯤의 일로 기억된다. 공공기관 이전발표를 앞두고 각 시'도가 한국전력 유치 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때였다. 대구'광주시 등이 한전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던 만큼 지자체들의 눈치싸움도 치열했다.
어느날 전국 시'도지사 회의를 다녀온 조 시장이 "박광태 광주시장이 한전 유치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며 대구도 포기할 뜻을 밝혔다. 이는 광주지역 기자들이 전해준 상황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얘기로는 광주시는 내부적으로 이미 한전 유치신청을 결정해 놓고 연막을 피우고 있다고 했다.
전후 사정을 알려줬지만, 조 시장은 "두 번이나 그렇게 말하던데?"라며 박 시장의 말을 믿는 듯한 눈치였다. 조 시장으로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에 비춰 시장쯤 되는 사람이 감히 거짓말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당당하게(?) 거짓말을 했고 결국 한전 유치에 성공했다. 한전 유치에 대한 가치 평가는 논외로 하겠지만 필자는 박 시장의 태도가 마음에 와닿았다. '비겁하다' '유치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고향발전을 위해서는 체면이나 명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세는 대단하지 않은가.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문화수도 선포식 행사로 광주를 찾았을 때다. 청와대 참모진은 노 대통령에 적대적인 현지 분위기에다 박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박 시장의 연설이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더해졌다. 예상과는 달리 박 시장은 '노(盧)비어천가'를 불렀다. 구절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노 대통령은 기쁜 나머지 박 시장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했다고 한다.
정치든 직장생활이든 인간관계가 먼저다. 자신에게 무한정의 찬사를 보내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조 시장이 2년 전 노 대통령에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구유치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가 "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박 시장은 취임할 때만 하더라도 '6급 주사보다 못한 자질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나름의 강점을 살려 문화수도 선포, 광산업단지'삼성가전 유치 등 큰 일을 해냈다. 정부를 상대로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비벼가면서 '기업가형 시장'으로서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박 시장 같은 분이 대구에 있다면 어떨까하는 점이다. 솔직히 필자는 100% 잘 될리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광주에서는 박 시장이 먹혀들 수 있겠지만 대구의 정서와 분위기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 시장에 대해 '채신머리가 없다'느니 '품위가 없다'는 욕부터 나올 것이고 뒤에서 손가락질을 해댈 것이 분명하다.
평소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거품을 물다가도 '명분'있는 주제와 맞닥뜨리면 만사 우선하는 것이 대구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경제도 되지 않고 행정도 어렵다. 누군가는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신라시대부터 형성됐다고 하지만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의식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구시민의 60%가 '떠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생활여건은 열악한 데도 적극적으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5월 말이면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를 뽑는 선거가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역경제를 살리고 서민들의 어려움을 보듬을 만한 동량이 나타날 수 있을까. 지역민의 정서가 바뀌지 않는 한 'CEO형 단체장'은 요원하다고 한다면 속단일까.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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