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무의촌

한 달여 전 발송인 불명의 편지 한 통이 배달돼 왔다. 일 년 전 그맘때 아이를 잃은 분이라 했다. "제 아이는 모 병원 소아과 병동에 입원해 있다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이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으나 일반 병실에 넣어졌습니다. 돌봐 주는 간호사가 없어 걱정이 많았습니다. 호흡기 물통에서 물이 넘쳐 기도로 들어갈까 두려웠고, 기계로 가래 뽑아 줄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러다 아이는 갔습니다."

◇편지에 따르면, 아이의 부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게 해 달라고 사정했으나 여의찮았다. 아이들을 위한 중환자실이 없다며 담당 의사도 안타까워했다. 부모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아이가 입원했던 병원이 대구'경북 최고라는 곳이어서 더욱 절망스럽다고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니 유난히 그 아이가 생각나더라"는 문장에는 원망과 자책이 배어 있었다.

◇일주일여 전에는 전국 최고라는 서울의 어떤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건' 하나가 보도됐었다. 그에 따르면, 신부전증으로 입원 중이던 어떤 환자가 일요일 0시쯤 심각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당직 중이던 레지던트 1년차 의사는 5시간 뒤에 나타났고 한 시간이 더 지난 뒤 처치가 시작됐다. 그 후 환자는 두 달째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환자가 바로 그 병원에 근무했던 마취과 의사라는 소개였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했다고 가족들이 가슴 친다고 했다. 문득 몇 년 전 매일신문에서 읽었던 '무의촌'(無醫村)이란 칼럼이 생각났다. 집안에 의사가 여남은 명이 넘는데도 어른의 병환을 모르고 지나쳐 상을 당했다며 의사인 며느리가 자책하며 쓴 글이었다.

◇인명은 재천이라니 병원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업자조차 충분한 처치를 받지 못한다는 말에서는 힘 없고 '백' 없는 서민들의 절망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대형 매장들이 시행하고 있다는 '그리터(greeter)' 제도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다급한 환자를 챙겨 병원의 능력을 총동원해 대처토록 할 수 있는 '청문관' 같은 것 말이다. 지난 설 연휴에는 의료 공백으로 인한 억울함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korea@ms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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