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李太洙 칼럼-德은 천지에 두루 통하거늘…

'임금은 쪽배요 백성은 강물' /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어야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변한다(窮則通 通則變).' 이는 만물이 존재하는 모습을 말한다. 장자(莊子)도 '천지에 두루 통하는 게 덕(通於天地者德也)'이라 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건 바뀌게 마련이다. 목숨이 있으면 나고 늙으며 병들고 죽는다(生老病死). 목숨이 없는 경우도 어김없이 생성소멸(生成消滅)한다.

변화(變化)란 있으므로 없어지고, 없으므로 생기는 걸 말한다. 이 같은 변화를 순리대로 가게 하는 것이 '통(通)'이고, 이를 순조롭게 하는 게 '덕(德)'이다. 숨구멍을 트면서 살 수 있게 하면 덕이 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부덕(不德)이다.

인간 세상에선 정직하고 수수하며 사랑하고 베풀면 통한다. 하지만 속이고 꾸미며 미워하고 빼앗으면 막힌다. 이 때문에 덕이 있는 사람은 넉넉하고 너그러우며 마음이 넓고 깊다. 부덕한 사람은 모든 게 그 반대편이다. 옹졸하고 옹색해 마음이 좁고 얕다.

마음이 좁고 얕은 건 '나'만 내세우는 탓이다. 이기심과 욕심이 자신을 갉아먹고 망하게 하는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삶을 통하게 하지 못하고 막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두루 더불어 어울려 산다는 마음이 곧 덕임을 모르거나 모르는 체하는 게 큰 문제다.

'좌전(左傳)'은 더불어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운다. '민신지주야(民神之主也)'는 '백성이 천지의 주인', 즉 '백성이 하늘'이라고 가르친다. 천지가 없으면 만물이 없고, 만물이 없으면 백성이 없으며, 백성이 없다면 임금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民主主義)란 '백성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일찍이 남명(南冥)은 '임금은 쪽배요 백성은 강물'이라 했듯이, 강물이 순하게 흐르면 쪽배는 제대로 떠갈 수 있지만, 강물이 성을 내면 쪽배는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 이런 이치는 '하늘의 뜻'이라고나 할까.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은 서로 다른 인식을 보여줬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을 향해 전방위로 대립각을 세울 만큼 판이한 입장이었다. 공통된 점은 양극화의 심각성과 그 해법의 필요성 동감뿐이었다.

사학법(私學法) 재개정 문제, 정부의 규모, 한'미관계와 대북 정책, 국민연금 개혁 등 어느 현안을 놓고도 대척점에 서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양극화 해법에 있어서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연초에 노 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 확대론'에 박 대표는 '양극화의 주범은 현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실패로 끝난 구시대 사회주의의 유물 때문이라는 논리로 상반된 견해를 폈다.

사학법 논란은 '재개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완강히 맞선 박 대표는 한'미 관계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미국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노 대통령과는 달리 전통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외교 현안을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의 증세론과 큰 정부에 반기를 들면서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감세와 증세 중에서 과연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 밝히고 국민의 선택을 받자'고 했다.

아무튼 노 대통령과 박 대표가 구태를 벗으면서 정책적 화두를 던져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갈 가능성을 어느 정도 시사했다는 점에선 고무적이다. 어제는 김한길'이재오 여'야 원내대표가 '산중 회담'에서 내일 국회를 53일 만에 정상화하기로 합의해 다행이다. 하지만 이젠 진정으로 국민이 바라는 게 뭔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박 대표도 예외는 아니나, 칼자루를 쥔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더 늦기 전에 국민이 새 희망을 가지고 뛸 수 있도록 귀와 가슴을 여는 아량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옛 선현들이 갈파했듯이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민심을 잡아 아무리 잔꾀를 부려도 안 될 일이 될 턱은 없다. 민심은 바람처럼 불고 다녀 막을 수도 없는 법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은 '통즉변(通則變)' '통어천지자덕야(通於天地者德也)' '민신지주야(民神之主也)'의 순리와 이치를 깨달아 '하늘인 백성'을 받드는 바람이 새롭게 일기를 기대한다.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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