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청와대, 프로인가 아마인가

신참 직원이 첫 출근하던 날 상사가 서류 뭉치를 던져 주며 복사를 해 오라고 지시했다. 난생 첨 큰 직장에 들어온 신출내기, 사무기기가 복잡하게 설치돼 있는 방에 들어가 기계 속에 서류를 차례차례 끼워 넣었다. 스위치 같이 생긴 걸 누른 후 복사본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계 작동 소리만 나고 서류가 튀어나오질 않았다.

이리저리 기계를 두드려도 보고 밑으로 옆으로 들여다 봐도 원인을 알 재간이 없어 황당해 하고 있는데 고참 여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뭐가 잘 안 되나요?"

"예, 서류 복사 좀 하려고 기계에 넣었는데 빨리 안 나와서요…."

"복사라니요? 이 기계는 보안 기밀 서류 분쇄기인데요."

"#$※@…"

최근 외교 비밀 문건이 잇달아 줄줄 새 나와 제멋대로 폭로되고 있는 청와대의 허술한 보안 수준을 보면서 떠올려 본 풍자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부터도 '아마추어 정권'이란 일부의 평가가 나왔던 정부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집권 프리미엄 따라 청와대 조직 안에도 소위 386세대니 '노빠 부대' 주변 운동권 코드 인맥들이 적잖게 포진했고, 따라서 개중에는 젊은시절 '운동'에만 세월을 보내느라 국가'정부 같은 정밀하고 방대한 조직 관리의 경험을 겪어 볼 기회가 없었던 인사도 없지 않을 것이다.

복사기와 보안 서류 분쇄기도 구별 못할 만한 신참 아마추어라는 뜻은 아니지만 이번 NSC 비밀 문서 유출 사안을 보면 국익 보안 관리 측면에서뿐 아니라 국정 수행 능력 측면에서 볼 때도 매우 위험한 아마추어리즘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일부 언론의 해석처럼 청와대 내부의 조직끼리 '동맹파'나 '자주파' 간의 암투이거나 내부 비친미 계열의 정책 뒤집기 전략이라면 아마추어 급이 아니라 더 무서운 고수(高手)의 정치 게임이 된다.

국가의 기밀, 그것도 안보와 직결된 한미 간의 군사 동맹 외교 관련 비밀 문건이 내부의 이념이나 노선의 마찰 무기로 오용되고 있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것(알권리를 가장한 기밀 공개)이 21세기 간첩의 정보 송신 수법이다'는 극단적이고 불신에 찬 비판을 거침없이 내놓은 판이다. '대한민국은 내부의 적들(친북좌파)에 의해 자멸할지 모른다'는 네티즌도 있다.

정권의 핵심부인 청와대에서조차 국가 비밀 문서가 동네 세탁소 광고 전단지보다 더 허술하게 나돌 정도가 되니까 그런 댓글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이 신생 정부가 운동권 시절 이후 처음 잡아 본 아마추어 정권이란 현실적 핸디캡을 감안해 주는 의미에서, 전문가 집단의 위원회라도 만들어 효율적 국정 운용 정책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와 이해로 갖가지 위원회 양산을 묵인해 줬음에도 그것마저 예산 운용에서 상식을 벗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청와대 소속 위원회(24개)들과 국무총리실 위원회(27개)의 올해 예산 총액은 4천333억여 원, 지난해보다 무려 423억 원이 더 늘어났다.

이 중 가장 많이 증액된 위원회가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 107억 원이나 늘어났다.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 진상 규명 위원회도 56억여 원 증액됐다. 결국 일제 시대 관련 과거 진상 규명 두 가지에만 163억 원을 들인 셈이다. 대조적으로 아동 정책 조정 위원회나 장애인 복지 조정 위원회 같은 결식 아동 문제, 소년소녀 가장 문제 등 어린이나 장애인 관련 정책 연구 개발이 절실한 분야에는 기백만 원만 증액됐다.

국민 경제 자문회의나 노사정 위원회, 정부 혁신 위원회 등 주민 입장에서는 절실한 과제인 경제와 노사, 정부 개혁 분야의 위원회들도 고작 3억~5억 원이 증액됐을 뿐이다.

그들의 눈에는 국민 경제나 노사정 문제, 정부 혁신, 아동 정책, 장애인 복지보다 친일 반민족 과거 조사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나 다름없는 편향 예산 증액이다. 양극화 해소 명분 아래 서민 세금 올리고, 재건축 개발 이익 환수해서 그 돈으로 경제'노사'아동 제쳐 두고 과거 조사나 하겠다는 사람들을 과연 프로급 국정 관리자로 봐줘야 할 것인가.

정말 청와대 안에 복사기와 서류 분쇄기를 구분 못하는 수준의 신참 아마추어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아마인 척하면서 2007년 말 대비하며 초고단수를 두고 있는 것인지 이래저래 불안하긴 마찬가지지!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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