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근대화 100년-(8)사과 산업

능금 생산량 전국 1위…지역 대표 '명품'

'이브, 윌리엄 텔, 스피노자, 뉴턴….' 이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일의 하나인 사과이다.

사과는 유사 이전부터 인류가 먹어 온 대표적 과일. 우리도 '능금'이란 이름으로 오랜 재배역사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과는 겨우 100여 년 전 이 땅에 뿌리내렸다. 확고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사과도 본격적 과수원의 등장은 1905년에 이뤄졌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명품 농산물이 된 사과 100년을 돌아본다.

■서양 능금의 등장

한반도에는 서양 능금의 등장 이전 토종 능금이 삼국시대부터 재배됐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 계림유사(1103년)에 처음 등장, '임금(林檎)을 민자부(悶子訃)라고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능금은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임금'에서 변한 말인 것이다.

서양 능금의 국내 등장은 1883년 인천 미국영사관 뜰에 관상용으로 심어진 게 효시다. 대구에 처음 서양능금이 선보인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1892년 영국인 선교사 아치볼드 플레처가 남산동 자택에 심은 게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몇 년 뒤인 1899년경이라는 설도 있다.

석태문 박사(경북도 정책기획팀 전문위원)는 97년 경북대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경상북도과물동업조합 1930년도 사업성적서에 한국명이 '안목사'인 플레처가 사과를 처음 심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플레처는 1910년에야 대구에 왔다"며 "안목사는 1897년에 대구에 와 '안의와'라는 한국이름을 얻은 제임스 아담스"라고 주장했다.

지역의 본격적 사과산업은 1905년 일본인 농업이민자와 대구지역 유지 4명이 대구 칠성동에 1천224평의 능금밭을 조성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나무 수는 330그루에 불과했다. 이후 지역에서는 1911년 능금 병해충인 면충(綿蟲)이 칠곡 왜관에 발생하자 효과적 방제를 위해 최초의 자생조합인 왜관과수조합이 설립돼 1917년 경상북도과물동업조합으로 성장했다.

■전국 최고의 명성

1912년 재배면적 87ha에 불과하던 대구 능금은 1920년 320ha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전국적 위상은 낮았다. 1931년 조선총독부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경북도내 사과나무 수는 황해도, 평안남도, 함경북도, 함경남도, 경기도에 이어 6위였다.

대구지역 서양 능금이 전국적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해방 이후부터다. 60년대에는 경북 능금 출하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원활한 수송을 위해 전국 기차역 역장이 모여 회의를 하기도 했다.

대구경북능금농협 박태환(51) 상무는 "대구·경북이 이렇게 사과 주산지로 자리잡게 된 것은 기온·강우량 등 과실의 착색·당도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상환경이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경북의 사과 재배면적·생산량은 전국 1위다. 2004년 기준 재배면적은 63%, 생산량은 61%를 차지하고 있다. 1992년 3만6천355ha로 정점을 이룬 뒤 감소추세를 보이다 99년 이후 감소폭이 둔화돼 지난 2002년 1만6천663ha, 2004년 1만6천775ha 등 생산이 안정되고 있다.

1914년 중국 하얼빈에 145상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150상자를 처음 판 수출도 2002년 1천147만1천 달러까지 늘어났다가 국내 가격이 강세를 보이면서 다소 주춤거렸으나 지난해 다시 630만 달러로 늘어났다.

경북도내 주산지는 1940년대 경산·영천에서 60년대 이후 북진을 계속, 지난해 경우 영주·의성·안동·청송·문경 순으로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많았다.

■과제

하지만 지역 사과산업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우선 사과의 국내 연간 소비량이 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003년 1인당 사과 소비량은 7.5kg으로 95년 15.9kg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1인당 연간 과일 소비량에서 사과가 차지하는 비중도 80년 48.4%에서 2003년 13.4%로 낮아졌다.

김종성 경북도 유통특작과장은 "사과 소비가 준 것은 감귤, 포도, 배 등 다른 과일로 대체됐기 때문"이라며 "단위당 생산성은 향상되고 있어 다소 과잉기조가 유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또 재배품종이 다양하지 못하고 편중돼 있어 수급이 불안정하다. 지역의 대표적 품종인 후지와 쓰가루는 지난 97년 각각 80%와 11%에서 2003년 71%, 10%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다.

이와 함께 전체 과원의 22%만 키낮은 사과원으로 교체돼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 현재 10a당 노동투하시간은 한국이 199시간인 데 비해 칠레는 100시간, 이탈리아는 66시간에 불과해 노동력을 덜 수 있는 키낮은 사과원 갱신이 시급한 실정이다.

경북도는 이에 따라 오는 2010년 80%까지 키낮은 사과원 비율을 끌어올리고 관수시설을 90%까지 확충키로 했다. 또 재배품종 다양화로 경영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 조·중·만생종 비율을 현재 10:20:70에서 2010년 20:30:50으로 변화시켜나가기로 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사진: 인부들이 사다리에 올라가서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1930년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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