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민원이나 사건 현장에서 경찰은 곧잘 돌팔매를 맞는다. 대형 사건일수록 원인을 따져 묻기보다 해결과 수습에 관심과 책임이 더 많은 탓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책임지는 명예와 긍지보다는 고달픔이 오버랩되는 게 한국 경찰의 한 단면이다.
관동대 초빙교수로 변신한 최기문(崔圻文·54) 전 경찰청장은 국회 청문회를 거친 임기제 경찰청장 1호다. 그러면서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임기를 고집하다간 후임자의 인사권을 빼앗아야 할 형편이라 깜짝 발표를 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그의 후임자도 시위 후유증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시위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경찰청장 시절 그가 한 일은 적잖다. 수사 부서를 단일 경과로 독립시킨 수사경과제 도입은 기피 부서로 찍힌 수사경찰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높인 제도로 평가받는다.
조직관리의 두 요소인 채찍과 당근 중 당근을 즐겨 썼다. 초급 간부인 경위 자리를 다섯 배 가까이 늘려 말년 경사들 한을 풀어주기도 했고 미흡한 보상체계를 손질, 목숨 걸고 일한 하위직의 한을 달랬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 검경 협의체를 발족시키기도 한 그답게 "먼저 서로를 인정하라"고 충고한다.
최근 경찰조직 일부의 헌법소원이나 모자반납 사건 등을 두고서는 "불만이 있어도 한계는 분명히 지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보통으로 불렸지만 바람을 타지 않았다. 정권이 TK에서 멀어지고 영남이 외로운 시절 오히려 중책이 맡겨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경찰 정보가 모두 모이는 정보심의관을 맡았다. 장난을 쳤다면 돌아오지 않을 자리였다.
행정고시 합격 후 해군장교로 근무할 당시 선배들이 제복 입는 조직을 추천했다. 평택서 경비과장으로 시작했다. '촌놈이 저말고 믿을 게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들고 나는 시간이 늘상 새벽이라 대학원에 다니는 딸과 해병대 복무 중인 아들은 아버지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도둑으로 몰리기도 했다.
일 아닌 딴 이유로는 윗사람을 찾지도 옆눈을 살피지도 않았다. 그러나 융통성없이 열심히 한 처신이 오히려 경찰 총수 자리에 앉게 했다고 믿는다. 경무관 승진도 조계사 사태로, 0순위이던 종로서장에서 좌천된 한직에서였다. 그 역시 인사에 관한 한 사정이 없었다.
공직을 등산에 비유한다. 등산은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하다. 청장시절 누굴 만나는 자리에는 늘 비서를 데리고 갔다. 유혹의 틈을 주지 않았다. 얼마 전 펴낸 '험블레스 오블리제'란 회고록에는 경찰생활 25년의 소중한 경험을 담았다. 고달프면서도 의무는 끝이 없는 경찰의 고충이 느껴진다.
고향 영천 북안면에는 아직 부모가 지킨다. 은퇴한 나이치곤 너무 젊다. 아침이면 북한산을 오르고 영어회화와 인터넷도 배운다. 고향 대학에서 강의하는 희망도 품고 있다. 어떤 일이 보람되고 가치있는 일인지 고민한다. 그렇다고 서두르지 않는다. 인생진로를 바꿀 때는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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