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문학 따로 삶 따로

초등학교 시절, 고운 여선생님은 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와서도 시인과 작가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문학에 대한 경외심의 발로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인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들도 보통사람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좀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술자리를 함께하고 교유의 시간을 넓혀가면서 문인들은 분명 갑남을녀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만의 고유한 냄새와 은연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런 가운데 가끔씩 눈에 띄고 귀에 들리는 몇몇 문인들의 문학과 삶의 괴리는 또다시 문학에 대한 외경심에 찬물을 끼얹곤 했다. 정말로 '문학한다'는 얘기가 무색할 때도 있다. 그것도 문단에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의 일이고 보면 낭패감은 더할 수밖에 없다.

만약 민족시인 상화와 육사가 지조를 잃어버렸다면, 미당이 친일시비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면, 청마가 목우와 반목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최근 들어 지역 문단에 떠도는 불미스런 소문들이 그런 생각들을 자아냈다. 물론 당사자들은 유언비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누가 누구의 시를 표절했다느니, 어떤 점잖은 양반의 사생활이 그것밖에 안 된다느니, 그 사람은 염불보다 잿밥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느니, 또는 분에 겨운 상을 받고도 막걸리 한 잔 나눌 줄을 모른다느니….'

그런 얘기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문학이 공허한 메시지로 추락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미려한 언어의 연금술과 문학적인 서정성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로지 현란한 말과 글의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문학강연을 한 고은 시인은 "시는 심장의 뉴스"라고 했다. "시는 시집이나 문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고은 시인의 말대로라면 그들의 문학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문학은 일상적인 삶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벗어나 있어야 하는 역설의 미학이라고 들었다. 시인 작가의 아름다운 문학성과 현실적인 삶이 너무도 다른 것은 독자에게도 충격이다.

무성한 언어의 기교로 스스로의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언제까지고 묻어둘 수는 없다. 의연하지 못한 행보와 낭만과 여유가 없는 일상이 그나마 이루어놓은 문학적 성과를 스스로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자들은 문학작품을 가슴으로 읽고 싶어 한다.

조향래/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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