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바람달

음력 2월. 바람 많은 계절이다. 또한 어제는 '영등할머니날'. 바람신(風神)인 영등할머니가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룻날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집집이 사정을 살피다가 20일(지역에 따라 3,15,20일)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속설이 있다. 영등할머니가 세상에 내려올 때 딸을 데리고 오면 날씨가 좋지만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바람을 몰고 온다고도 했다. 고부관계가 껄끄럽긴 하늘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예전 이런 날엔 어머니·할머니들이 장독간에 정화수를 떠놓고 한 해의 농사 풍년을 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가는 겨울이 아쉬워서인가. 철지난 눈이, 전국적으로 꽤 풍성히 내렸다. 겨울의 마지막 날 작별의 인사마냥 찾아와서 봄의 첫 날을 순백으로 장식했다. 춘설(春雪)이자 왠지 가슴 설레게 하는 서설(瑞雪)이다. 눈 그친뒤 며칠간은 한기가 돌겠지만 다만 꽃샘추위일터.

자연의 운행은 참 신묘해서 무엇 하나 이유없는 거라곤 없다. 이 달이 바람달인 것도 그러하다. 나무들을 보면 더욱 그 의미가 또렷이 와닿는다. 지난 가을부터 플라타너스 가지마다 방울처럼 대롱거리는 열매는 지금도 바람결에 그네를 타고 있다. 은사시 나무에도 묵은 해의 잎들이 여전히 미이라처럼 붙어 있다. 많은 나무들이 그러하다. 한데, 새 잎이 돋을 때쯤이면 거짓말처럼 헌 잎들이 사라지고 없다. 영등할매가 몰고 온 음력 2월의 변덕스런 바람 때문이다. 묵은 해가 남긴 지저분한 흔적을 깨끗이 청소하고 음력 2월. 바람 많은 계절이다.

나라 안이 끓는 죽솥마냥 시끌시끌하다.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이 새 순 같고 이슬방울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가한 미친 짓거리들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교도관들의 여성 재소자 성추행에다 급기야 국회의원의 성추행 사건까지 터졌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으니,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진정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니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이니 자랑할게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태를 통탄해야 하리라. 사마귀가 제 뒤에 참새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매미를 노리는 꼴을 두고 옛말에'당랑포선(螳螂捕蟬)'이라 했다. 눈앞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면 결국 큰 화를 입게 되는건 고금이 다를 게 없거늘.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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