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중시됐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첫 대목에 나오듯이, 말은 뱉어지는 순간 그것의 진실이 오염돼 버린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말은 그 순결을 지키기 위해 감춰지곤 했다. '짧은 말과 긴 침묵' '여운과 명상'이 미덕이었으며, 말을 아끼는 대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진실을 전하기도 했다. 말은 이같이 언제나 전하고자 하는 진실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어 숙명적으로 '결여'를 담보하고 있다고나 할까.
쪊하지만 정치(政治)는 말로 시작되고 말로 끝난다. 몇 마디의 말은 정치인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나, 정치판에서는 '막말' 때문에 '품위' 문제가 도마에 오르곤 한다. 이때마다 민주주의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영국 의회의 전통이 단골로 인용된다. 그 전통은 의회 안팎에서 품위를 지키며 재치 있는 말솜씨를 부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정치문화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쪊영국 의회에선 아무리 화가 나도 '명예로운 ○○ 의원께서'라고 품위를 지키며 '거짓말쟁이' '위선자' '비겁자' '나쁜 놈' 등의 금기어(禁忌語)를 쓰면 의장이 즉각 '취소' '사과' '퇴장' 명령을 내리는 등 제재가 가해진다. 막말과 폭언, 저질적인 비하와 욕설, 심지어 몸싸움까지 불사하는 우리 국회 풍토와 비교하면 한숨이 나온다.
쪊금도(襟度)'품격'재치는 정치지도자의 향기와도 같으나 우리 정치가들에게는 요원하기만 할까. 어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막말 한판'은 가관이었다. 홍 의원이 이 총리와 천정배 법무장관의 '5'31 지방선거' 관리 공정성 문제 제기에 이 총리의 노기가 폭발했다. 그는 홍 의원의 과거 '선거법 위반'을 꼬집었고, '이 총리처럼 브로커(윤상림)와 놀아나지는 않았다'고 받아쳤다.
쪊얼굴 붉히면서 오간 말 중 한 부분이지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설전이 끝난 뒤 김원기 국회의장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등 일침을 놓긴 한 모양이나…. 정치가들이 정책이나 당의 방침을 국민에게 알리는 본래의 일보다는 상대를 공격하는 '전투적인 일'에 열을 올린다면 분명 '금도의 실종'이다. 셰익스피어는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도 냄새가 고약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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