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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밥 퍼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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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5일 오전 6시, 대구역 북쪽 '만남의 광장'. 채 가시지 않은 어둠 사이로 남루한 옷차림의 노숙자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같았다. 남세현(48)·김정숙(45) 씨 부부와 삼덕성당 청년회 자원봉사자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다슬기국과 밥, 김치가 차려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노숙자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남씨 부부의 일요일 아침풍경은 지난 8년간 한결같았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대구역 노숙자들과 인근 쪽방 사람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 온 것.

유난히 바람이 매섭던 1998년 겨울, 아내와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컵라면을 들고 나와 무료 급식봉사에 나섰던 남씨는 "일요일에는 아무도 급식을 해주지 않아 하루종일 굶기 일쑤"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루 한끼라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노숙자들의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급식봉사를 계속하게 됐단다.

남씨는 라면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메뉴를 김밥으로 바꿨다. 부부는 일요일 새벽 2시면 일어나 40~50명 분의 김밥을 말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가족들끼리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고 아내 김씨는 말했다.

그러던 중, 남씨 가족은 급작스레 무료급식을 중단해야 했다. 중국에서 새 사업을 추진하던 남씨가 사기를 당한 것. 1년 4개월 동안 쉬다가 4년 전 다시 무료급식 봉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남씨가 따뜻한 국과 밥을 내주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 보통 토요일 오후에 장을 보고 새벽 3시면 일어나 밥을 짓는다. 아내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자신의 수입을 무료급식 봉사에 보탰다.

남씨는 무료급식 봉사를 하면서 사회단체나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을 일절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간 최모(60) 씨. 세탁업을 하다가 실패, 노숙자로 전락했던 최씨가 재기를 다짐하며 돌아간다며 사례로 3만 원을 남씨에게 쥐어줬다는 것.

"3천만 원보다 더 소중한 3만 원이었죠. 이렇게 노숙자들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움이자 행복입니다."

남씨는 그저 밥을 주고 방을 얻어주는 식의 복지정책이 무의미하다고 했다. 실제로 노숙자들이 재기할 수 있는 사회 풍토와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남씨의 지론.

"나눔의 기쁨은 누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아침에 무거운 국통을 아내와 낑낑거리며 들고 와서 빈 통을 들고 돌아갈 때에는 몸과 마음이 빈 국통처럼 가벼워진답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8년 동안 매주 일요일 아침 대구역 무료급식소를 찾아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사랑을 베풀고 있는 남세현, 김정숙 씨 부부.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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