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대차그룹, 검찰 압수수색 배경에 '촉각'

현대차그룹은 대검 중수부가 김대중 정부 시절'금융권 마당발' 김재록 씨에게 수십억원의 로비자금을 준 정황을 포착, 26일 현대. 기아차 본사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자 당황하며 수사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있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검찰이 수사중인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자칫 이번 수사가 확대돼 환율 문제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경영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한 데 대해 "검찰이 수사중인 상황인만큼 사안에 대해 언급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라며 더 이상의언급을 회피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오늘이 일요일이라 우리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압수수색 사실을 알았다"며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하려는 혐의가 무엇인지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 검찰 조사 대상은 어디에 =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검찰의 수사 대상과 진위 여부, 향후 그룹 경영에 미치게 될 영향 등을 분석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검찰과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현재 검찰이 조사하는 현대차그룹의 로비 정황은건축이나 건설 인.허가 관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이 "김재록씨 조사과정에서 김씨가 현대.기아차 그룹 사업과 관련해 수십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고 이 자금중 일부는 출처가 글로비스의 비자금인 것으로 나타나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건축 관련 인.허가로비 대상은 글로비스가 설립된 2001년 2월 이후로 유추된다.

2001년 이후 현대차그룹의 주요 건축사업은 현대.기아차의 서울 양재동 사옥 매입과 증축, 건설계열사 엠코의 인천 아파트 분양사업 등이 있다.

양재동 사옥의 경우 농협이 1996년 1월 착공, 1999년 12월 완공한 지상 21층짜리 건물로, 구조조정 차원에서 2000년 1월 첫 공매에 부쳐졌으나 6차례나 유찰을 거듭하다 계열분리 이후 5곳 안팎의 신사옥 후보지를 놓고 저울질하던 현대차에 2000 년 11월 2천300억원에 매각됐다.

현대차는 또 1천700억원을 투자, 작년 5월부터 양재동 사옥의 3층짜리 별관 건물을 본관과 같은 높이인 21층으로 증축하는 공사를 착공, 올해말 준공할 예정이다.

또 엠코의 아파트 분양사업은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에 있던 그룹 계열사 다이모스의 공장이 서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 부지 1만2천여평에 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지난해 3월 지하1층-지상21층짜리 9개동 총 708가구를 분양했다.

여기에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제철(옛 현대INI스틸)이 최근 충남 당진공장에 201 1년까지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 중인데, 이들 건축이나 건설 인.허가와 관련해 로비를 부탁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과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또 건축이나 건설 인.허가 관련 외에 검찰 수사대상으로 여러가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이날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전장부품 계열사인 현대오토넷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은 현대차와 독일의 지멘스가 작년 7월 이 회사를 인수하고 현대오토넷이 최근 그룹의 다른 전장부품 계열사인 본텍을 인수 합병한 것과 무관하지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현대제철의 당진공장(옛 한보철강) 인수 등에 막대한자금을 투입한 데다 향후 일관제철소 건설(5조원)과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1 2억달러) 등의 사업에 내부자금 외에 국내외에서 상당액의 자금을 차입해야 하는 만큼 대출과 관련한 로비를 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당초 현대차의 1998년 기아차 인수가 조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검찰은 조사 대상 시점에 대해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이후라는 것은 분명히 해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은 또 로비 정황이 포착된 대상에 대해 "부실기업 인수와는 관련이 없는 것같다"며 "김재록씨의 부실기업 인수 관련 부분과 금융대출 알선 외의 다른 유형일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밖에 김씨가 로비를 한 현대차그룹의 사업에 대해 "정부와 관련된 사업일 수도 있다"는 검찰의 설명 등을 들어 검찰 조사 대상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방위산업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 경영권 승계로 조사 확대될까 = 현대차 안팎에서는 그러나 로비 정황의 대상이 어느 것이더라도 이번 검찰 조사에서 글로비스가 주요 대상이 된 데에 주목하고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6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글로비스는 설립 이후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물류물량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면서 지난해 매출 1조5천408억원과 순이익 799억원을 올렸으며, 지난해말 상장 이후주가가 연일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즉 검찰이 이 과정에서 글로비스 상장과 관련해 현대차그룹이 김재록씨를 통해모종의 로비를 시도한 정황을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게 현대차그룹 안팎 일부의관측이다.

검찰이 "후계 구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확인한 점에 비춰 일단 이번 조사가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는 관련이 없을 지라도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사실이 드러나 이 문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검찰의 조사가 건축이나 건설 인.허가 관련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이 같은 가능성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다.

그룹의 공장 신.증축 등을 담당해온 엠코는 정몽구 회장이 10%, 정의선 사장이25.06%, 글로비스가 24.96%, 기아차와 현대모비스가 각 19.99%의 지분을 갖고 있는비상장사로, 그룹이 지난해 5월 주주배정 방식을 통해 종합건설사로 육성키로 하는등 "글로비스와 함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도구"라는 일부의 의혹을 사왔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수사는 현대차그룹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는 아니다" , "현대차그룹의 위상이나 역할에 비춰 국가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정당한 기업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부서 중심의 제한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는 검찰 설명 등을 들어 이번 조사가 일부분에 국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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