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배기 은빈(여)이는 3일 병원에서 첫 생일을 맞았다. 같은 병실을 쓰는 어린이 환자 어머니들이 생일케이크, 과일, 떡을 챙겨줬다. 담당의사는 예쁜 옷을 은빈이에게 선물했다. 그날 밤 은빈이는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재롱도 떨고 웃기도 잘해 여느 아이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은빈이를 바라보는 어머니 최경순(29·경주시 동천동) 씨는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언제 갑자기 또 혈변을 볼지, 몸에 경련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다.
은빈이는 지난 해 중순부터 병원을 들락거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련과 장출혈로 수시로 혈변을 보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 은빈이에겐 병원이 가장 친숙한 곳이다. 가끔 집에 가면 오히려 낯설어하고 당황한단다.
최 씨는 은빈이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지난 2003년 낳은 지 20개 월 만에 세상을 떠나보낸 첫 딸 은화와 은빈이가 꼭 닮아서다. 게다가 우연인지 은화 역시 은빈이와 같은 증세로 눈을 감았다.
"사실 은빈이는 제 배가 아파 낳은 아기가 아닙니다. 첫 딸 은화를 잃은 뒤 고민 끝에 지난 해 입양한 딸이에요.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이인데 아픈 증세까지 닮다니요? 이번만은 아기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은빈이를 입양하기까지 최 씨는 숱하게 고민했다.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은화 때처럼 또다시 그 아기를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 14t 화물차를 몰면서 차 안에서 잠을 자는 날이 더 많았지만 틈만 나면 전화로 은화를 찾던 남편(양중식·41) 역시 은화 생각을 지우기 쉽지 않았단다.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우연히 알게 된 미아 일시보호소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했어요. 은화가 미처 써 보지 못한 아기 용품들도 가져다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입양에 대한 TV프로그램을 보더니 제게 말을 먼저 꺼내더군요."
3개 월을 망설인 끝에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일찍이 홀로 된 뒤 어렵게 자식들을 키워온 시어머니도 흔쾌히 승낙, 최씨의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입양이 결정되고 건강검진을 마친 은빈이를 데리러 간 날, 최 씨는 자신이 낳은 아기를 처음 볼 때처럼 설레었단다.
이미 아픈 은화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쫓아다니느라 3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졌지만 부부 둘 다 열심히 일하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오지 않으리라 여겼던 불행이 또다시 이들 부부에게 닥친 것.
"은빈이를 데리러 간 날, 처음 얼굴을 봤어요. 정말 예뻤어요. 은화와 닮은 모습도 마음에 들었고요. 은빈이 보기 전 날, 남편은 집안 청소를 하느라 법석을 떨었는데 은빈이가 집에 갈 일이 거의 없으니…. 세상은 역시 뜻대로 안되나 봅니다."
최 씨는 은빈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픈 아기들과 함께 병원에 머무는 어머니들의 충고 때문이다.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기들도 금세 알아차리고 병세도 더욱 안 좋아진단다.
"아기들은 엄마와 마음으로 대화를 하잖아요. 은빈이도 제 얼굴을 쳐다보면 제 마음을 아는 것 같습니다. 제 눈에 눈물이라도 고이면 제가 먼저 울음을 터뜨려요."
며칠 내로 은빈이는 배에 구멍을 내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MRI검사, 위 내시경 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출혈이 있는 부위를 찾지 못해서다. 소장 부위에서 출혈 부위를 찾게 된다면 은빈이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은빈이는 바깥세상 구경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밖은 지금 한창 봄꽃이 만발하겠지요? 남편과 함께 은빈이를 안고 꽃구경을 할 수 있는 날만 애타게 기다립니다. 더 이상 아기를 잃고 싶지 않아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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