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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입니다]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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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쬐그마한 주말 집을 갖고 있는 후배가 "마당이 쑥천지가 됐어요"라며 전화를 해왔다. 게으른(?) 주인 탓에 그녀의 뜰은 수 년전부터 온통 풀들 차지가 돼있다. 마을 노인들이 제초제로 싹 없애버리라고 훈수를 두지만 그녀는 땅을 죽일순 없다며 그렇게 풀들과 동거하고 있다. 토끼풀·바랭이·강아지풀 같은 것들이 제 세상인양 키재기를 하는 뜰에는 그러나 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귀퉁이는 온통 쑥밭이다. 둘러보면 달래며 냉이·씀바귀에다 부추까지 어울려 있다. 바람결을 타고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왔는지 모두가 저절로 난 것들이라 한다.

해마다 온갖 풀들이 났다가 죽어 썩는 과정이 거듭되면서 흙은 더없이 기름졌다. 쑥을 캐보니 향내가 백화점이나 시장의 쑥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 향기에 취해 손톱이 까매지도록 한나절 내내 쑥을 캤다.

이맘때면 각종 산나물·들나물이 쏟아진다. 저마다의 향내에 맛도 제각각이다. 이 중 쑥만큼 쓰임새 많은 것도 없을성 싶다. 입맛이 깔끄럽고 춘곤증으로 눈뚜껑이 자주 무거워지는 이맘때 쑥은 보약이나 마찬가지다. "애쑥국에 산촌 처자 살찐다"는 옛말도 있지만 된장 풀고 콩가루 묻힌 어린 쑥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 쑥국은 구수한 내음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돌게 만든다. 쑥과 쌀가루를 버무려 쪄낸 쑥털털이나 고소한 콩고물을 듬뿍 묻힌 쑥떡 맛은 또 어떠하고. 게다가 쑥뜸으로,쑥탕으로, 여름철 모깃불로도 쑥은 비상한 능력을 발휘한다. 어떤 봄나물보다도 약용 성분이 풍부한 쑥은 특히 단옷날 해뜨기전, 그것도 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뜯은 쑥이 가장 약효가 높다는 속설도 있다.

'쑥'이란 이름부터가 어디서나 쑥 쑥 잘 자라기에 붙여졌다고 한다. 하기야 원폭으로 초토화됐던 일본 히로시마의 죽은 땅에서 맨 먼저 돋아나온 것이 쑥이라지 않는가. 여린 봄나물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어떤 환경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향내를 품는 너그러움이 놀랍다.

만물이 생기를 더해가는 이런 봄날, 계절성 우울증 마냥 오히려 심신이 물 먹은 솜뭉치처럼 가라앉을 때가 있다. 이럴 때'들판의 치료사' 쑥을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매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재를 즐겁게 살라는 라틴어 명구처럼 팔팔한 쑥의 기(氣)에서 새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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