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공호흡기 벗고 서야지"…'피에르 로빈 증후군' 홍관우군

관우(11개 월)의 거친 숨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김남주(35·여·수성구 두산동) 씨는 아들 곁을 떠나지 않지만 고통을 함께 나눌 길은 없다. 한 달 전만 해도 관우가 산소호흡기에 의지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어림없는 일.

첫 돌도 지나지 않은 관우는 이미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세상 밖으로 나올 때부터 제대로 숨을 쉬지도 울지도 못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울음보는 터졌다. 하지만 양쪽 손 모두 가운데 손가락 두개씩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한쪽 발가락도 짧았다. 입천장도 갈라져 있었다.

에드워드 증후군(Edward Syndrome. 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정신박약이 나타나고 작은 턱과 사지 기형이 특징. 생후 수개 월 내 사망)일 가능성이 크다며 2개 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시부모는 아이에게 정을 주면 더 힘들어진다며 아이 옆에 붙어있는 김 씨를 말렸다.

늦은 결혼에 임신이 잘 안돼 애태우던 끝에 안게 된 아이. 포기할 수 없었다. 각종 정밀검사 결과 증세는 비슷하지만 살아날 가능성이 한결 높은 피에르 로빈 증후군(Pierre Robin Syndrome)으로 밝혀졌다. 희망의 끈이 완전히 끊어지진 않은 셈.

"다행히 두뇌발달이 정상이고 정신박약 증세도 없대요. 초롱초롱한 아이 눈망울을 보세요. 아직 엄마 젖 한번 못 빨아봤는데 이렇게 예쁜 아이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김 씨는 줄곧 관우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들러 굳은 손가락을 펴고 스트레칭, 마사지를 하는 등 관우에겐 고통스런 나날이 이어졌다. 그동안에도 입천장이 열려있는 탓에 숨쉬기는 여전히 힘들었고 경련이 일어 수시로 병원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재활치료 선생님이 감탄할 정도로 관우가 잘 견뎌냈어요. 어느새 목도 가누고 보행기도 탈 수 있게 됐습니다. 선생님은 관우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단한 녀석', '멋진 남자'라고 하시더군요."

안타깝게도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달 말 폐렴으로 병원을 찾아야했다.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해 관을 목으로 밀어 넣기를 네 차례. 결국 목 한 쪽에 구멍을 내 인공호흡기와 연결된 관을 집어넣었다. 입천장을 접합하는 수술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가계엔 주름살만 늘었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 영업소를 따로 만들려다 빚만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고 일흔이 넘은 시아버지는 암 수술을 받았다. 때문에 집주인 아주머니의 배려로 전세를 월세(월 30만 원)로 돌린 뒤 손에 쥔 전세보증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우가 있는 병원 근처로 월세방을 잡고 싶었지만 가진 돈으론 어림도 없었다. 남편이 매달 벌어오는 130여만 원으론 생활비조차 대기 어렵다. 관우 치료비, 약값, 기저귀 값은 김 씨의 카드를 돌려 근근이 대고 있는 형편. 막다른 골목에 몰렸지만 관우의 손을 놓을 순 없다.

"의료보호 1종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치료비라도 적게 들 수 있어 좋으련만 동사무소에선 기다려보란 말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희망을 잃지 않는 건 관우가 잘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죠."

관우가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김 씨. 그가 조심스레 빌어보는 소원은 두 가지다. 둘째 아이를 갖는 것과 관우가 인공호흡기 신세를 벗어나는 것.

"관우가 인공호흡기를 떼면 홀로 설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바라지할 생각입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 장담할 순 없지만요. 그 땐 건강하고 듬직한 동생이 관우 곁에 서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처지에 아이를 하나 더 갖는다는 게 너무 큰 욕심일까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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