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자기살해의 추억

미국서부의 어느 해변 가에 올라온 채 바다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고래를 보았다. 정확한 이유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자살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고래는 상당한 지능을 갖추고 무리를 이루어 사회생활을 하며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생물학적 목숨만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는 즉자적인 동물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대자적 동물, 즉 초보적 이성을 갖춘 동물이다. 무리 속에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고 용납하지 못한 고래의 마지막 선택은 생물학적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유물적 생존본능을 넘어서는 유심적 충족본능이 있다는 말이다. 결국 고래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다. 정신적 자아가 육체적 자아를 살해한 것이다.

뇌물수수혐의로 조사를 받던 서울시 고위공무원이 세상을 버렸다. 차를 구입하는 데 700만 원의 특별할인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다. 사과박스, 차떼기트럭에 수백억이 오가는데 익숙한지라 뇌물 같지도 않은 터에 굳이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얼마나 참담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처와 자식들의 얼굴이 왜 안 떠올랐겠는가? 하나 회사의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수조 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물 쓰듯 써놓고도 당당한 사람들이 매일 텔레비전에 수두룩한데….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결국 고래의 자기살해 사건과 동일한 것인가? 육체를 제거함으로써 정신의 괴로움을 해소하려는 정신의 발작적 노력이라는 점에서 애석하게도 고래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 사람의 특권임에도 그것을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육체적 평안과 물질적 풍요, 외형적 관계의 지위와 권력에 길들여진 자아가 있다. 700만 원을 계기로 그것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괴로움의 근원은 그에게 있었음에도 손쉽게 육체적 자아를 희생양으로 삼아 살해하고 만 것이다. '그 길들여진 자아'를 살해하는 것이야말로 '부활적 자기살해'로 이른다는 것을 외면한 것이다.

넓은 논두렁길에 두루미 한 쌍이 서있다. 암놈의 병색이 완연하다. 못가로 열 걸음을 채 못 걸어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만 하루 넘게 옆을 지키며 물 한 모금 먹지 않던 수놈도 결국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만다. 고래의 자살, 그 사람의 자살 그리고 두루미의 자살이라 글쎄 ….

황보진호 하늘북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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