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는 1945년 해방 직후 혼란기부터 끊이지 않았다.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던 우파 정치인 송진우가 1945년 12월 자택에서 저격당해 암살된 것이 거물 정치인에 대한 본격 테러로는 처음이다.
이어 중도좌파 거물 정치인 여운형이 1947년 7월 귀가하던 길에 극우파 청년의 저격으로 숨졌으며 독립운동가 출신의 정치가 김구도 1949년 6월 숙소 겸 집무실로 사용하던 경교장에서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됐다.
"여운형의 경우 해방 사흘 뒤부터 테러를 당하기 시작해 2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10차례나 습격당했고 11번째 테러에 숨졌다"고 할 정도로 해방 직후에는 정치테러가 빈발했으며 이런 분위기는 이승만 정권 하의 우익 테러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주범이 잡히더라도 비교적 가벼운 처벌만 받고 나중에 석방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안두희처럼 아예 처벌을 면한 사례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주로 야당 정치인들이 테러 대상이 됐다.
정권 차원의 개입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69년 6월 대표적인 야당 정치인이던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자택 부근에서 괴한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김 총무의 승용차 창문에 초산을 뿌리는 사건이 벌어졌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신병치료차 일본에 체류 중이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가 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팔레스 호텔에서 납치돼 한국으로 끌려와 외교 문제로 비화한 일도 있으나 정확한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특정 개인에 대한 테러는 아니지만 1966년 9월 벌어진 '국회 똥물투척 사건'도 정치적 목적으로 저질러진 사건이다.
당시 삼성이 비료공장 건설 명목으로 수입금지품목이던 사카린 원료를 대량 반입하는 권력형 부정사건이 불거지자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두한씨는 국회에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을 향해 분뇨를 투척한 뒤 의원직을 사퇴하고 구속됐다.
제5·6공화국 이후로는 주요 정치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테러는 한동안 발생하지 않았다.
1991년 6월 새로 임명된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취임을 앞두고 한국외국어대에서 마지막으로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대학생들이 던진 달걀과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이 대표적인 정치인 피습 사례로 꼽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9년 6월 퇴임 후 첫 외국출장을 나가다가 71세 노인 박의정씨가 던진 '페인트 달걀'을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박씨는 사건 직후 붙잡힌 뒤 구속기소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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