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후예들/ 정범준 지음/ 황소자리출판사 펴냄
'고종은 생전에 몇 명의 자녀를 두었을까. 대한제국의 존속 기간은 몇 년이었나. 이승만이 그토록 영친왕 이은의 귀국을 방해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지막 황세손 이구가 일본에서 떠돌다 생을 마쳐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제국의 후예들'은 가파르게 굽이친 한반도 근현대 100년사의 발화점이자 심장부인 대한제국 황실의 이야기이다. 무능했던 대한제국 황실에 망국의 일차적 책임을 물어야 했지만, 사실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자리조차 갖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 땅 권력자들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거나 이용당하면서 누구보다 격심한 부침을 겪었다. 이 책은 이들의 삶을 있었던 모습 그대로 복원, 한반도 근현대사의 빈 페이지를 채우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저자는 대한제국 후예들의 온전한 자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문헌을 뒤졌지만, 자주 난관에 봉착했다. 1차적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이방자의 자서전조차 대필자에 의해 내용이 첨삭되었거나 앞뒤가 맞지 않았다.
황실에 대해 서술한 대부분의 저서와 언론은 내용 확인이나 취재원에 대한 정확한 명시도 없이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싣기 일쑤였다.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가 감정적이다 보니 황족들의 독립운동이라면 덮어놓고 사실을 부풀렸다. 일제의 잔혹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심지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대를 끊기 위해 일제가 석녀(石女)인 이방자를 영친왕과 맺어주었다거나, 덕혜옹주가 일본인 남편 다케유키에게 얻어맞아 유산했다는 소문은 우리가 한 세기 동안 그 시대를 얼마나 감정적으로 인식해왔는지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책에서는 영친왕 이은과 영친왕비 이방자, 의친왕 이강과 덕혜옹주, 영친왕의 아들 이구 등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새로운 면모가 소개된다. 거기에는 민갑완과 이구의 전 부인 줄리아 뮬록, 황적에 올랐던 이강의 두 아들 이건과 이우, 그리고 황적에 오르지 못한 후예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비중있게 다룬 민갑완은 어려서 이은의 간택단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평생을 수절하며 살아야 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조선 황족과 일본 황족의 정략결혼, 소위 일선융화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녀가 감내한 세월 속에는 대한제국 황실 그 누구의 삶보다 장중하고 애절한 역사가 서려 있다.
황족들은 그들의 나약함이나 무능함과는 상관없이 몰락해가던 대한제국 민중들에게 희망의 불꽃이었다. 특히 의친왕 이강은 무수한 풍문과 논란의 진원지였다. 해방 후, 황실의 재산을 악착같이 빼앗으려던 정부의 등쌀에 밀려 황실 후예들의 삶은 고단해졌다.
언론과 대중들은 '거지가 된 왕자'와 같은 선정적인 이야기에만 흥미를 가졌을 뿐이다. 그래서 대한제국의 후예들은 세상의 이목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조용히 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오늘 그들의 삶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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