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마음의 월드컵] ①김기호 축구 저술가

아직도 생생한 아르헨티나의 첫 우승

1978년, 난 대학 3학년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며 세상사에 관심이 많던 그 때 영국에서는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었다. 니카라카에서는 소모사 정권이 비틀거리고 있었고 컴백한 펠레가 뉴욕 코스모스 팀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숙생이었던 나는 축구 전문지를 구독하고 있었고 지칠줄 모르고 축구장을 찾아다니며 주 6회 이상 볼을 찰 정도로 축구에 빠져 있었다. TV가 없던 나는 친구 집에서 매주 월요일밤 11시30분쯤 방영하던 MBC의 서독 분데스리가 경기를 지켜보았고 당시의 스타들인 볼프강 오베라츠, 라이너 본호프, 게르트 뮬러 등 의 경기 내용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에서 본선 진출을 노리던 한국과 이란과의 TV중계를 보았는데 이란과 2대2로 비겨 본선행이 끝내 좌절되었던 기억도 난다. 중계 도중 TV 자막으로 '이리역 폭발 사고' 뉴스를 접한 기억 역시 생생하다.

16개국이 출전한 아르헨티나 월드컵대회에서 이변의 희생자는 전 대회 우승팀 서독이었다. 2차 리그 A조 최종전에서 서독은 오스트리아의 요하네스 크랑클의 슛에 2대3으로 무너지는 이변이 일어났다. 2차 리그 B조 최종전이 TV중계 사정으로 브라질 대 폴란드전 (브라질 3대1승)이 아르헨티나 대 페루전(아르헨티나 6대0승)보다도 먼저 진행되었는데 아르헨티나가 골 득실차로 브라질을 누르고 롭 렌센브링크가 버티고 있는 네덜란드와 우승을 가리게 되었다.

6월25일 열린 결승전에서 전반 38분 아르헨티나가 마리오 켐페스의 득점으로 앞서 나갔으나 경기 종료 9분전 나닝거에게 동점 골을 허용, 연장전에 들어갔다. 경기 종료 1분 전 렌센브링크의 미사일 슛이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했으나 홈 그라운드의 골포스트가 가까스로 막아 주었다. 연장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켐페스의 득점에 이은 다니엘 베르토니의 쐐기골로 우승하는 순간, 관중들은 경기장에 쏟아져 나와 선수들을 무등 태워 마구 달렸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모든 거리는 승리를 축하하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당시 비델라 장군의 군부 독재정권도 이를 통제할 수 없었다. 깊은 인상을 남겨준 아르헨티나의 그 선수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는 대입 준비에 허덕이던 고교시절을 지나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월드컵이었고 28년이 지났지만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이메일 아이디도 'Aw'78'로 쓰고 있다.

김기호(축구 저술가)

※ 전직 교사인 김기호씨는 축구 매니아 수준을 넘어 '킥 오프', '신태용의 축구교실 킥', '축구 기초기술 지도' 등 축구 관련 저서를 펴내는 등 축구 관련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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