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구에 미쳤다. 남자라면 대부분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난 축구를 좋아하는 정도가 조금은 심한 편이다. 잘하지도 못하는 축구를 한답시고 무릎인대가 파열되고 팔꿈치 수술을 받는가 하면 갈비뼈가 두 번쯤 부러지고 코뼈가 내려앉아 수술받고, 깁스는 대여섯 번, 가벼운 발목 부상 같은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해외의 큰 경기는 밤을 새서라도 봐야 되고, 한때는 전술 연구한답시고 온갖 축구 관련 서적을 사 모아서 탐독 하기도 하고 야근하느라 밤 꼬박 새고도 잠 한숨 안자고 축구하러 가는 건 일상이며, 매주 토요일은 직장팀, 일요일은 조기회 팀에서 운동하느라 '휴일을 가족과 함께' 라는 건 말 그대로 구호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에는 나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축구가 그렇게 재미있는 줄 알지 못했다. TV에서 만화영화 하는 저녁시간에 축구경기가 중계되면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 울기도 했을 정도로…. 그러다가 중학생이 됐고 1982년 날씨가 점점 더워 질 무렵, TV와 라디오에서 생소한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티니, 마라도나, 캠페스, 브라이트너 등등. 나는 그 이름들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었다.
그러다가 '월드컵' 인지 뭔지 대회가 시작되고 연일 방송에서는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우승후보가 어떻고, 어느 팀이 이기고 지고 하는 등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하루 종일 하이라이트, 재방송을 계속했다. 그걸 지켜보던 내 귀에 어느 순간 '(칼 하인츠) 루메니게' 와 '(파울로) 로시'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나는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차범근 밖에 모를 정도로 축구에 대해 잘 몰랐기에 당연히 차범근이 뛰고 있는 독일이 세계최강인 줄 알았고 독일의 스트라이커로 득점 선두를 달리던 루메니게를 최고로 여겼다.
그러나 우승후보 브라질을 상대로 해트트릭(이 말도 그 때 처음 들었다)을 기록하며 순식간에 득점 경쟁에 뛰어든 로시가 특집으로 다뤄지더니 그때부터 나도 뉴스 시간이 되면 누가 득점을 했는지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었다. 루메니게와 로시의 득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나도 점점 더 빠져들었고 서독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이 열리자 난생 처음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한 밤중에 TV를 시청하게 되었다.
난 당연하게 서독을 응원하였지만 그때까지 득점 공동선두였던 로시가 첫 골을 기록할 즈음에는 승패보다 경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마침내 (마르코) 타르델리가 득점을 기록하고 두 팔을 내민 채 머리를 흔들며 포효(이 장면은 전자오락게임의 득점장면으로 오래도록 인기를 누렸다)할 때는 나도 모르게 같이 포효하였다.
결승전이 끝나고서야 나는 소크라테스, 플라티니, 마라도나가 어떤 선수인지 알 수 있었고 디노 조프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가를 이해하였으며 브라질과 이틸리아가 월드컵을 3번씩 제패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알면 알수록 나는 점점 더 축구에 빠져들었고 이듬해인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가 끝난 후 나는 완전히 축구의 늪에 빠져버렸다.
박준모 대구은행 IT기획부 과장
※ 은행원인 박준모씨는 축구 매니아로 열렬한 조기축구회 회원이며 월드컵 중계를 보기 위해 잠을 설칠 각오를 하고 있다. 어릴때 본 1982년 스페인월드컵대회를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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