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미지·감성 정치

비싼 물건을 사고팔 때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고 큰절을 한다고 쉽게 사는 사람이 많을까. 결혼도 마찬가지다. 번지르르한 외모에 순간적으로 끌려 결혼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도 드물지 않겠는가. 하지만 선거판은 아직도 사정이 다른 것 같다. 평소와 달리 재래시장을 휘저으며 서민적인 모습을 연출하거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넘어갈 듯 반가워하며 큰절까지 하는 연기는 거의 어김없다. 그래서 표가 몰리기도 한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어제 제17대 국회 전반기 의장직을 물러나는 자리에서 최근의 '이미지'감성 정치'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제58회 국회 개원 기념식에서 김덕규 부의장이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그는 '정치의 본질보다 외양이 중시되고,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은 백안시되는 기현상'에 대해 개탄했다. 더구나 이 같은 경박한 현상에도 정치인들이 별로 안 부끄러워하는 사실을 더욱 우려했다.

○…특히 경륜과 경험이 자산이 아니라 '제척 사유'가 되는데도 정치권이 뼈저린 반성과 각성은커녕 오히려 그런 현상을 부추긴다고 질타했다. 이는 극단적인 정치 불신에서 온 '자업자득' 측면이 적잖다는 그의 자괴감은 과연 그만의 것인가. '기성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기 직전'이라는 말에 정치권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다.

○…민주주의에는 여론이 중시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선거가 마치 연예인 인기 투표라도 하듯이, 비정치적 이미지 만들기와 감성적 접근으로 여론을 만들곤 한다. 선거에는 후보자의 성향과 가치관, 소속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과 정책 등이 중시돼야 한다. 그럼에도 역겨운 모습의 '연기와 연출'이 먹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으며, 왜 여전히 그런 수준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여론 몰이'로 뽑힌 정치인이 과연 어떠했는지 충분히 경험했다. 그 해악도 볼 만큼 봐 왔다. 당사자는 물론 그런 인물을 뽑은 이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음을 절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서 겉포장 정치의 재앙을 막아내야 한다'는 김 의장의 쓴소리는 바로 우리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이미지 정치, 감성 정치를 넘어선 이성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그 손해는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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