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은 월드컵대회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대회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대회에 두 차례 출전했던 난 멕시코월드컵에서의 아쉬움과 이탈리아월드컵에서의 허무함을 가슴에 간직해왔다.
멕시코 월드컵때 당시 대우로얄즈 소속이었던 난 32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게 됐다는 흥분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함께 출전한 동료들도 마찬가지였고 성원을 보낸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와의 본선 첫 경기에서 아쉽게 1대3으로 진 직후 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부르차가와 함께 도핑테스트 대상으로 정해져 검사실 앞에서 만났다. 우리 둘 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내가 부르차가에게 "듣던대로 아르헨티나는 강팀이었다. 축구를 매우 잘 한다"고 하자 부르차가는 "한국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잘해 힘든 경기를 했다.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가 거칠었다"고 한 게 떠오른다.
이탈리아와의 경기도 아쉽게 2대3으로 진 후 불가리아와 경기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특히 아쉬움이 많아 기억에 남는다. 수중전으로 펼쳐진 경기에서 우리는 1대0으로 끌려가다 김종부의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멕시코 월드컵에서 라이트 윙으로 뛴 나는 이 경기 동점 상황에서 측면을 돌파한 후 슛을 날렸으나 골대를 맞고 골로 연결되지 않아 매우 아쉬웠었다.
예선에서 탈락한 후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흥분과 함께 주눅이 들었던 우리들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으면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를 펼쳐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등의 대화를 나누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아르헨티나의 부르차가는 2대2로 팽팽하던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아 결승골을 터뜨렸다.
당시 세계 축구의 전술 흐름과 정보에 어두웠던 한국은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더 큰 실패를 겪었다. 미드필더들의 플레이는 더 빨라졌고 압박 축구가 새로 선보여 우리 선수들을 당황하게 했다. 결국 스페인과 벨기에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고 우루과이와는 1대1로 비기는 데 그쳤다. 100m를 11초 초반대에 주파했던 난 이탈리아월드컵대회에서는 빠른 스피드를 살리라는 지시를 받고 원 톱으로 나섰는데 득점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당황한 마음에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과 이탈리아 월드컵 우루과이전 교체 출전 포함 6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많은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 채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에서 국가대표 후배들이 4강에 오른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성과였다. 내 생전에 월드컵 4강의 성과를 보리라곤 전혀 생각할 수 없었고 그런 점에서 후배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이제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난 선수들에게 주눅들었던 월드컵 출전 경험을 이따금씩 들려주며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주문하곤 한다. 모교 후배들이기도 한 (김)동현이는 현재 포르투갈리그에서, 부산 아이파크의 (이)승현이와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되는 경남FC의 (정)경호는 K리그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박)주영이는 이번 월드컵에 출전했다. 스코틀랜드로 떠나기 전 전화를 걸어온 주영이에게 과감하고 자신있게 플레이하라고 이야기했고 주영이도 잘 하겠다고 했다. 주영이를 포함해 한국 대표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펼치길 기대하고 있다.
※ 변병주씨는 국가대표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대회에서 6경기 전 경기에 출전했다. 1993년 현역 은퇴 후 인천제철 여자팀, 용인대 여자팀 감독을 거쳐 2000년 8월부터 모교인 청구고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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