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하루살이 인생'이란 레터링이 찍혔다. 주상영(28·여·대구 달성군 서재리)씨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알바(아르바이트)는 보통 일당이잖아요. 매일 알바를 마치고 나면 뿌듯했어요. 하루하루 후회 없이 열심히 살고 싶었거든요." '하루살이 인생'은 그녀의 인생을 제대로 함축하고 있다.
그녀는 10년 가까운 알바 경험을 가진, 흔히 부르는 말로 '알바 고수'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라면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 대구 달서구 감삼동 한 주유소에서 만난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주유기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력서 첫줄은 신문 배달
그녀가 알바의 세계에 뛰어든 건 17세이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동네에서 남학생들이 태권도 도복을 입고 다니는 게 무척 멋있어 보였어요. 하지만 돈이 없어 학원비를 벌어야 했죠." 그래서 무턱대고 찾아간 곳이 동네 신문지국. 그녀의 이력서 첫 줄은 신문 배달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지만 당시 한 부당 한 달 1천 원으로 학생으로선 벌이가 짭짤했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야 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가끔씩 신문 구독을 거절하는 주민과 피할 수 없는 대면도 겪어야 했다.
"한 번은 배달 도중 영구차를 마주쳤는데 너무 놀라 신문을 집어던지고 집으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죠." 어느새 배달한 지가 2년이 훌쩍 넘어갔다. 그 덕에 그렇게 하고 싶던 태권도를 배워 당당히 초단을 땄다.
◆알바는 쭉~ 계속되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알바와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 "학교 초창기에 적응도 잘 안 되고 해서 근처 커피숍에서 6개월 정도 서빙을 했어요." 그래도 힘든 것보다는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른단다. '짠돌이'인 당시 사장의 눈을 피해 몰래 쿠키랑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꺼내먹은 기억이 아직도 그녀를 웃음 짓게 한다.
겨울방학 때는 어묵을 팔러 다닌 적도 있었다. 대구보다는 시골 5일장이나 외진 할인소매점 앞에서 행사를 통해 어묵을 파는 일이었다. "일당을 많이 준다고 해서 시작했죠. 하지만 사은품이 약하고 경험이 떨어져서 그런지 항상 경쟁사에 밀렸어요." 1997년 대학 졸업 후 그녀는 남들처럼 일반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직했다. 그녀의 이력에서의 외도(?)였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가 하던 식당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알바 아닌 알바를 했다.
◆정규직보다 알바가 체질
2000년 일반 회사 사무직으로 잠시 취직했지만 또 다시 어머니 식당 일이 어려워지면서 지원군으로 나서야 했다. 그녀에게 정규직은 아무래도 인연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외도는 거기서 끝이었다. 이후로는 동네 호프집 등으로 알바를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한때는 주위에서 일반 직장에 들어가라고 많이 타일렀죠. 하지만 이젠 나이도 있고 어딜 가든 어렵긴 마찬가지고요." 이젠 알바가 더 체질에 맞다고 한다. 주씨는 "알바가 시간당 1천400원~3천500원 선으로 벌이는 그리 넉넉치 않지만 시간도 자유롭고 자기계발할 여유도 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너무 시급을 보면 안돼요. 사회 경험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어야지 단순히 돈만 벌려고 하면 일이 많이 힘들어지거든요." 알바 고수답게 충고도 빠트리지 않는다. 지금 그녀는 틈틈이 짬을 내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딴 상태. "앞으로 요가 가르치는 알바를 뛸 생각이에요. 요가만 하긴 그러니까 뭐든 한 가지 정도 더 뛰어야겠죠." 씩씩하고 당찬 그녀의 모습은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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