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나는 흑백 필름처럼 굽이치는 국도를 사랑했다
그토록 오랜 창백한 밤을 비춘 집어등 불빛과 청어의 유영,
연민이 일어나지 않는 육체를 증오했다
해변을 따라 파도가 피어오르는 허파,
…〈중략〉
누가 내 내면을 열어보라, 거대한 태풍의 왕국이리라
궁전 같은 오두막, 커피포트 같은 식탁
11월 저녁 누가 내면에 대해 떠든다면
술도 없이, 깨달음도 없이, 7번 국도를 보여주리라. -박용하의 시 '7번 국도 옆으로 가다' 중 일부-
▨문학의 산실, 국도 7호선과 31호선
한적하게 나 있는 길은 걷는 이를 생각에 젖게 한다. 더구나 한 시간을 넘게 달려도 다른 이들의 흔적조차 찾기가 쉽지 않은 길이라면 그 감흥은 훨씬 더하다.
경북 동해안을 끼고 달리는 길은 크게 세 갈래다. 7번, 31번 국도와 지방도 20호선.
부산 자갈치 시장입구에서 시작해 함경북도 온성까지 쉬지 않고 내달리는 7번 국도는 동해안을 찾아가는 기본이다. 백두대간을 등허리에 지고 동해바다와 맞닿아 달리는 이 길은 포항 이북으로는 동해안 물동량 수송을 도맡고 있다.
포항 이남은 부산 기장군에서 함경남도 안변에 이르는 31번 국도가 대동맥 역할을 한다. 기장에서 울산까지는 동해남부선 열차를 사이에 두고 동해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이 길은 한 폭의 그림같다. 여름철로 접어들면 길가 바다색과 소나무의 초록빛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7번 국도가 산업대동맥이라면 31번 국도는 서민들의 삶을 실어 나른다. 그래서 이 두 갈래 길이 만나는 포항 근처 7번 국도는 자고나면 시 한편 생산해 낼 정도로 습작가들에게 작품의 산실(産室) 역할도 하고 있다. 취재 도중에 만난 여류시인 박언지(48·부산 당감동) 씨도 "마음이 허하거나 친구가 생각나면 이 길을 찾는데, 이 길을 보면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는 편지 한 통은 써 간다."고 했다.
이문열이 '젊은 날의 초상'에서 '해발 칠백미터 창수령을 넘어 가득찬 환희로 하마트면 울 뻔 했던' 곳도 동해바다(대진해수욕장)를 목전에 둔 7번 국도 노상쯤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이 자리에서 "아아, 지금도 떠 오른다. 광란하던 그 바다, 어둡게 맞닿은 하늘, 외롭게 날던 갈매기, 사위어가던 그 구성진 울음, 그리고 문득, 초라하고 왜소하던 내 모습이여'라며 도취했다.
여기에 포항에서 영덕까지 바닷물과 완전히 맞붙어 달리는 길, 지방도 20호선이 더해져 바닷가 마을은, 억만금을 준다해도 사람의 손으로 빚을수 없는 비경, 말 그대로 인간의 세계를 벗어난 선계(仙界)를 연출하기도 한다.
▨신화의 트라이앵글을 찾아 가는 바닷가 길
바닷가 길은 끊어질듯 하면서도 쉼없이 이어진다. 내륙의 길이 산이 나타나면 터널을 뚫고 강이 마주치면 다리를 놓아 건너는 것과 달리 바닷가 길은 바위가 있으면 그 자리에 두고 돌아가고 절벽이 깊으면 그 절벽이 끝날때까지 꼬부랑 꼬부랑 타고 지난다. 그래서 해안길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올해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태어난 지 800주년 되는 해다. 삼국유사는 경북 동해안을 떼내면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을 정도로 이 지역과 강한 지리적 유착성을 갖고 씌어졌다.
그래서 정일근 시인은 "동해안 길(구체적으로는 31번 국도)은 신화의 트라이앵글을 찾아가는 행로"라고 표현했다. 정 시인은 "신화의 트라이앵글은 대왕암과 감은사, 이견대를 연결하는 선을 일컫는 것이고 이 삼각형 안에 동해바다를 정점으로 한 신라의 역사와 호국혼이 들어 있다."고 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 한 뒤 죽어서 용이되어 나라를 지키겠노라며 자신을 화장해 바다에 장사지내달라고 했던 문무왕, 그런 부왕(父王)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지은 감은사(感恩寺)와 해중릉을 망배했던 이견대. 죽은 뒤에 용이 되어 금당의 지하 배수시설을 통로삼아 감은사를 왕래한 문무왕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자면 정말로 살아숨쉬는 신화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7번, 31번 국도다.
▨사랑과 낭만 깃든 20번 지방도
영덕에서 포항으로 접어든 뒤 바닷가로 붙어 들어가면 만나는 길이 지방도 20호선이다. 영덕∼포항간 52㎞에 걸쳐 있는 이 길은 어떤 지점에서는 지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막다른 골목길 들어가는 느낌을 주면서도 아래 윗 동네를 이어주고,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준다.
이 길이 요즘은 새로운 문화도 만들었다. 팬션이나 민박, 카페를 유치해 마치 유럽 어느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도 '길'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다.
하지만 길을 번듯하게 닦고 그로인해 약간의 돈을 만지게도 됐지만 이런 '개방'을 영 탐탁찮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다. 포항 청하면에서 만난 김수영(55) 씨는 "살기는 편해졌지만 예전같은 재미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툭하면 담장치고, 내 땅 내놓으라며 소송해대는 탓에 정이 말라 버렸다. 길이 뚫리면서 생긴 고약한 문화"라는 것이다. 편하고 돈 많이 버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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