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버스토리] 스포츠 교실 어린이들

초등학교 4학년인 정희(여·10·대구강동초)는 매주 금요일 오후 실내화를 벗고 축구화로 갈아신는다. 신발 끈은 꽉 맬수록 좋다. 발을 조이는 기분도 좋다. 괜히 '나이키' 무늬를 쓰윽 닦아 본다. '오늘은 웬지 느낌이 오는걸.'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학원과 집으로 흩어지는 시간. 정희는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같은 축구 교실 친구들은 벌써 몸을 풀고 있다. 정희는 이 팀에서 유일한 여학생이다. "삐익~~." 코치 선생님의 호각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공을 멋지게 헤딩. '슛! 골인!'이 아니다. 머리를 비켜맞은 공은 앞에서 데굴데굴 구를 뿐이다. "1학년 때부터 남자애들과 축구 하면서 놀았어요. 살도 빠지고 좋더라구요." 멋쩍은 듯 머리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뒷 줄로 돌아가는 정희. 하지만 머리 속에서는 축구공이 그물에 출렁인다. '베컴'도 '미아햄'도 부럽잖다.

동구 동호지구 아파트촌 한가운데 자리잡은 강동초교. 사방이 아스팔트인 이 주변에서 학교 운동장은 유일하게 흙을 밟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 2일 오후 이곳에서는 '방과 후 축구교실'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공을 쫓아 그라운드를 뛰어 다녔다. 류시용 교장은 "매주 3시간의 체육 수업으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구기종목을 하기 어려워 올해 처음 축구 교실을 방과 후 학교 과목에 넣었다."며 "학부모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축구 교실은 학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고학년생들에게는 인스텝 슈팅, 드리블, 트래핑 등 축구 기술을 주로 가르치지만, 저학년 생들은 '가위·바위·보 게임' 등 공을 이용한 놀이부터 배운다. 공과 친해지기 위해서다. 헤딩 하다 안경을 부러뜨린 2학년 경렬(8)이는 "피아노 학원보다 더 재미있다."며 웃어보였다.

아이들 사이에선 사설 축구 학원도 인기다. 지난 해 8월부터 사설 축구교실에 다닌 호윤이(11)는 이번 여름 초등학생 풋살(5대5 미니축구) 대회에 출전한다고 했다. 3개월에 9만 원이니 비싼 돈도 아니다. 모정일 축구 강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만 갇힌 아이들에게 이런 체육활동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농구는 더 일찍 사설 체육 종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실내에서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체육관을 가진 초등학교는 거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3일 오후 대구교대 실내체육관. 시내 10개 초등학교에서 모인 '교대 어린이 스포츠반' 아이들이 공 튕기는 공소리로 체육관이 흔들릴 정도였다. 말총머리를 한 여학생도 열 명이 넘는다. 박정화 체육과 교수는 "현재 농구반 50명을 비롯해 테니스반도 운영 중인데 2학기부터는 축구, 무용도 개설할 예정"이라며 "멀리 경산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학부모도 있을 정도"라고 열기를 전했다.

그래도 모든 학생이 적어도 한 종목의 경기는 선수 수준에 이르도록 가르치거나 크로스 컨트리 등 강도 높은 체육 활동을 수시로 하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은 요원하다. 박 교수는 "학교와 영어, 수학 학원 오가는 일이 전부인 줄 아는 우리 아이들이 외국에 유학 가면 가장 먼저 놀라는 게 이런 차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농구 기술뿐 아니라 체조나 스트레칭도 중요하게 가르친다. 학부모 양정희 씨는 "친구 생일잔치도 가지 않고 이 곳에 올 정도로 아이가 좋아한다."며 "줄넘기에 젬병이던 딸이 이 곳에서 틈틈이 줄넘기를 배운 뒤로 1년 만에 학교에서 줄넘기 박사가 됐다"고 만족해 했다.

유치원 아이들도 이런 운동 붐에 가세했다. 같은 날 오전 대구시 청소년수련원 실내 체육관에서는 10명의 5~7세 아이들이 몸통보다 큰 농구공을 안고 코트를 누볐다. 공을 뺏기 위한 몸싸움(?)도 제법 거칠다. 아이들의 키를 감안해 허리를 낮춘 골대에 마침내 공이 골인되자 마치 NBA 선수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진다. 이 곳에는 '키 크는 농구교실', '농구 클리닉' 등 농구교실이 11개나 된다.

수련원 박선하 팀장은 "평일 뿐 아니라 토요일도 종일 농구교실 아이들로 꽉 찬다."며 "한번 수강하면 좀처럼 빈자리가 나지 않아 신청자가 줄을 설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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